"제가 1등한 거 아니에요?" 금메달 착각한 2등의 황당 세리머니 [스프]

권종오 기자 2024. 5. 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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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육상에서 결승선을 통과할 때 일반적으로 단 1명만 벅찬 기쁨을 만끽합니다. 그 1명은 당연히 금메달리스트이지요. 그런데 2명이 나란히 '금메달 세리머니'를 하는 황당한 일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1명은 금메달리스트가 맞는데 다른 1명은 자기가 1등이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정말 믿기 힘든 해프닝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육상 여자 10,000m에서 벌어졌습니다.
 

에티오피아 3명 모두 우승 후보

에제가예후 디바바
 
이 대회 10,000m 결승에는 모두 31명의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장거리 육상 강국 에티오피아 선수가 3명이었는데 에제가예후 디바바, 데라르투 툴루, 웨르크네시 키다네 이 3명이 모두 우승 후보였습니다. 디바바(1982년생)는 당시 22살로 떠오르는 강자이었습니다. 디바바는 에티오피아의 육상 명문 가문 출신으로 자매 가운데 여동생 티루네시 디바바(1985년생)가 가장 유명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5,000m, 10,000m를 석권하며 당시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육상 장거리 종목 2관왕에 올랐습니다.
에제가예후 디바바와 함께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 출전한 데라르투 툴루(1972년생)는 디바바의 사촌 언니로 1992년 바르셀로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10,000m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중국은 쑨잉지에(1979년생)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5,000m, 10,000m 2관왕을 차지한 중국 여자 육상 장거리 간판스타였습니다.
 

무명의 중국 선수, 극적인 역전 금메달

10,000m는 400m 트랙을 25바퀴 돌아야 하는데, 13바퀴를 남긴 중반부 상황을 보면 선두 그룹에 에티오피아 선수 3명, 그리고 중국의 쑨잉지에가 자리했고, 그 뒤를 케냐 선수 3명, 네덜란드 선수 1명, 그리고 또 한 명의 중국 선수가 바짝 쫓았습니다. 8바퀴를 조금 더 남기고 중국의 에이스 쑨잉지에가 뒤처지며 선두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또 다른 중국 선수는 계속 선두권을 지켰고 여기에 에티오피아 3총사와 네덜란드 선수 로나 키플라가트까지 5명이 앞에서 달렸습니다.
 
 
주목하지 않았던 중국 선수는 바로 산둥성 출신의 싱훼이나였습니다. 1984년생으로 당시 20살이었는데 이 선수는 우승 후보도 아니었고,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1년 전인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 10,000m에서 7위를 차지했지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에이스 쑨잉지에에 가려 관심을 끌지 못한 것입니다.

3바퀴 반 정도를 남기고 싱훼이나가 에티오피아의 데라르투 툴루 선수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선 뒤 3바퀴를 남기고 네덜란드 키플라가트도 제치고 3위가 됐습니다. 이후에 키플라가트와 엎치락뒤치락하며 3, 4위를 오르내렸고 1바퀴 반을 남기고 3위를 굳혔습니다. 잠시 뒤 마지막 한 바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2위로 달리던 에티오피아의 디바바가 먼저 스퍼트를 하며 1위로 올라섰습니다. 싱훼이나도 같이 스퍼트를 하며 에티오피아 키다네 선수를 제치고 2위에 나섰습니다.

디바바 1위, 싱훼이나 2위. 한 바퀴 따라 잡힌 선수들을 연이어 추월하면서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섰습니다. 결승선을 80m 앞두고 싱훼이나가 죽을힘을 다해 디바바를 추월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추월당한 디바바는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싱훼이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위로 착각한 2위의 황당 세리머니

 
정말 황당한 장면은 바로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싱훼이나가 1위로 결승선을 지나간 뒤 10m쯤 뒤에서 따라오다가 결승선을 2위로 통과한 디바바는 싱훼이나보다 먼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습니다. 디바바가 손을 내리자마자 싱훼이나가 뒤늦게 두 팔을 들고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1위로 들어온 싱훼이나는 중국 국기를 들고 트랙을 돌면서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디바바도 에티오피아 국기를 들고 트랙을 돌면서 나란히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디바바의 표정은 아주 밝았습니다. 그래서 관중들은 처음에는 디바바가 2위, 즉 은메달도 만족해서 좋아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디바바는 자기가 1등이라고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1등이라고 확신했고 싱훼이나는 한 바퀴 따라 잡힌 선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디바바는 경기 진행 요원이 알려줘서 뒤늦게 자기가 2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경기 직후 인터뷰를 하러 가는데 경기 진행 요원이 디바바에게 "당신 2등한 선수 맞죠?"라고 물어보자 디바바는 "아니요. 1등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진행 요원이 "아니요. 당신은 은메달리스트인데요"라고 말했고, 디바바는 이번에도 "아니요. 금메달이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까지 나서서 디바바한테 2등이라고 알려줬고, 그제야 디바바는 깜짝 놀라면서 한동안 이를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디바바의 코치는 심판진에게 가서 동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보며 싱훼이나가 정말 25바퀴를 다 뛰었는지 확인했지만 틀림이 없었습니다. 디바바는 "나는 그 중국 선수(싱훼이나)가 어디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다. 한 바퀴 따라 잡힌 선수인 줄 알았다. 만약에 착각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싱훼이나가 우승 경쟁자라는 걸 알았더라면 마지막에 힘을 더 내서 싱훼이나를 추월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경기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면, 싱훼이나는 경기 내내 디바바 뒤에서 달렸는데 경기 초반 아주 잠깐을 제외하곤 한 번도 디바바를 앞지른 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디바바가 싱훼이나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 처음 보는 선수인 데다 경쟁자로 아예 생각하지 못했기에 전혀 의식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경기에서 에티오피아 선수 3명은 나란히 2, 3, 4위를 차지했는데, 이들은 중국의 에이스 쑨잉지에 선수만 눈여겨보고 경계했지, 싱훼이나에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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