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국 위기…전공의들에게 미안하다” 눈물 흘린 의대 교수들

강윤서 기자 2024. 5. 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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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 “尹대통령, 이대로면 의료 파국…현명한 판단하길”
“한번에 의대 50% 증원한 국가는 전 세계 한국 뿐”
29일 보건복지부·의협 등 참여하는 심포지엄 개최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김준성 서울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이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직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전공의들에게 기성세대 의사로서 미안하다. 제 앞의 환자만 생각하고 (의료 정책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온 것을 후회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100일 넘게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두고 이같은 심정을 토로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 1509명 증원을 못 박은 가운데 의료계에선 '파국'이 닥칠 것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서울대의대 교수들은 연일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대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9일 서울대학교 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의료개혁의 방향을 논의한다. 심포지엄에는 비대위 소속 교수들 외에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과 안기종 환자단체연합 대표, 한지아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인 등이 참여한다.

비대위는 전날에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대로 의대 정원 증원을 강행하면 한국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의료 파국은 정해진 미래"라고 비판했다. 22대 국회를 향해서는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입법부, 국회가 유일하다"며 "2020년 의정 합의가 이제라도 지켜지도록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 기구를 설치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충분히 논의해달라"고 촉구했다.

교수들은 의료현장의 문제에 대한 원인 진단부터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앞서 정부는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을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의료계 입장은 달랐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숫자는 지난 20년 간 절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두 배 이상, 응급의학과 전문의 훨씬 더 많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의사 수가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핵심 원인은 필수의료 분야의 법적 부담과 낮은 수가라고 짚었다. 강 비대위원장은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해선 소아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안심하고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법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원칙에 따른 치료만으로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한 수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의료수가와 의료전달체계가 정비되면 떠났던 동네의원이 다시 돌아오고, 큰 병원 진료가 수월해질 것"이라며 "이렇게 1차 의료가 튼튼해지면 질병 예방에도 투자하는 바람직한 의료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체계 대신 무리한 의대 증원을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타했다.

소아흉부외과 교수인 곽재건 비대위 부위원장도 "대표적인 기피과로 여겨지는 저희 과는 지난해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딴 후배 2명이 지원했다"며 "약 5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방문해 지원율이 낮은 진료과의 모집정원을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시에 50% 의대 증원, 전 세계 한국이 유일"

교수들은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2000명' 증원을 강행했고, 규모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앞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지난 24일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포함) 모집 정원은 전년도보다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결정됐다.

비대위는 이렇게 의대 정원을 일시에 50% 늘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해외 의료선진국에서는 10~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증원을 실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증원이 필요하다 해도 한 번에 10% 미만의 증원이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며 "필요한 의사 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위한 시설과 교수진을 먼저 확보한 후 학생 수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꼬집었다.

현재 비대위는 내년 2월까지 자체적으로 '의사 수 추계 연구'를 진행해 필요한 의사 규모를 내놓을 계획이다. 방재승 전 비대위원장은 "이번 주 내로 대한예방의학회, 한국보건경제학회, 보건경제정책학회 등 세 학회에 추계 변수 리스트를 보내고, 내주 초까지 피드백을 받은 뒤 정부에 공문을 발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6월 말쯤 최종 데이터셋을 공개 및 배포할 예정"이라며 "의사 수 추계 연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해당 데이터셋을 통해 연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교수들은 국민과 전공의에게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피해자가 된 국민들께 정말로 죄송하다"며 "상아탑에 갇혀 제 분야만 생각하고 책임을 방기했던 걸 후회하고 (전공의들이) 사직과 병원을 떠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은진 비대위원도 "전공의들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본인들의 신념을 제대로 이룩할 수 있는 환경을 얻은 뒤 복귀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목이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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