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앙꼬 빠진 '배민클럽'…속타는 배민
쿠팡이츠 턱 밑 추격에 쫓기듯 전략 수정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 애플리케이션(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지난 28일부터 유료 구독제 '배민클럽'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배민클럽은 일정 금액의 가입비를 내면 가입기간 동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독 프로그램입니다. 배민클럽에 가입하면 배민클럽 표시가 있는 가게에서 '알뜰배달(다건 배달)' 배달비 무료, '한집배달' 배달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추가 거리에 따른 배달비를 받지 않고 다른 쿠폰을 중복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른 제휴 혜택도 예정돼있다고 하죠.
우아한형제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는 한편 관련 캠페인과 이벤트를 벌이며 배민클럽 오픈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시적으로 배민클럽 체험기간을 운영한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고객들은 당분간 별도 가입 없이 무료로 배민클럽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고객들이 미리 배민클럽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대대적인 홍보 내용 안에는 정작 '알맹이'가 쏙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미정'
구독 프로그램의 핵심은 고객이 '유료'로 가입한 후 가입비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구독비가 얼마인지, 그리고 혜택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정보죠. 그런데 이날 대대적인 오픈을 알린 배민클럽에 대한 설명에는 이 정보들이 모두 빠져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미정'이기 때문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아직 구체적인 구독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배민클럽의 가입비는 물론 구체적인 혜택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알뜰배달 무료 등의 배달비 혜택만 공개했는데요. 그저 "커머스 혜택과 타사와의 제휴 헤택을 지속 추가해나가겠다"는 것이 다였습니다. 배민클럽 무료체험 기간을 언제까지 운영할지도 미정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은 이미 지난달 25일부터 배민클럽 도입을 예고하면서, 배민클럽 혜택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이벤트를 해왔습니다. 이 한 달 동안 고객들은 알뜰배달 배달비 무료, 한집배달 배달비 할인 등 오늘 발표된 배민클럽 혜택을 똑같이 제공 받았습니다.
고객들은 지난 28일부터 앞으로 한시적으로 운영될 '체험기간'에도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됩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민클럽의 운영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난 한 달간 진행한 '미리 체험' 이벤트를 무기한 연장한 것에 불과한 셈입니다.
이에 대해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우선 배민클럽 인지도를 제고하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반응과 시장 상황을 살핀 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이 배민클럽의 가입비도, 혜택도 확정 짓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적인 서비스 오픈에 나선 점은 상당히 의아합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배달의민족 앱 내에서 배민클럽을 도입하겠다고 홍보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의문은 더욱 커집니다. 준비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시장에서는 배달의민족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쿠팡이츠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쿠팡이츠는 쿠팡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들에 대한 무제한 무료배달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쿠팡이츠로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우아한형제들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배달비 경쟁 격화
배달의민족와 쿠팡이츠는 지난해부터 배달비와 할인 프로모션을 두고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배달앱 시장 후발주자인 쿠팡이츠는 지난해 4월 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수도권에서 음식 주문시 10%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를 11월부터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배달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음식값 10% 할인 혜택은 고객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배달의민족도 맞불을 놨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5월부터 '누구나 추가 할인' 슬로건을 내세운 상시 할인 쿠폰 프로모션을 펼쳤는데요. 쿠팡이츠의 경우 돈을 내고 유료 멤버십에 가입해야 10%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배달의민족에서는 멤버십이 없어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브랜드 할인, 가게 할인과 중복으로 적용할 수 있어 할인폭이 크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양사의 경쟁은 올해까지 이어졌습니다. 쿠팡이츠는 지난 3월 26일부터 음식값 10% 할인 혜택 대신 '무제한 무료배달' 혜택을 도입했습니다.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과 묶음배달 두 가지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이 중 묶음배달을 이용할 경우 배달료는 무료가 됩니다. 단 서비스 지역은 수도권과 일부 지역이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은 곧장 쿠팡이츠를 뒤쫓았습니다. 지난달 1일부터 기존의 10% 중복할인 혜택과 알뜰배달의 무료배달 중 한 가지를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혜택을 확대했는데요. 이때도 배달의민족은 '멤버십이 없어도 무료배달'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유료 멤버십 회원에게만 무료배달 혜택을 제공하는 쿠팡이츠를 저격한 셈입니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10% 중복할인 혜택을 없앴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25일에는 갑작스럽게 유료 멤버십 도입을 발표하기까지 했는데요. 그간 유료 멤버십 가입 없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우던 배달의민족이 스스로 전략을 완전히 뒤집은 겁니다. 어찌 보면 배달의민족이 계속 쿠팡이츠의 전략을 따라잡기에 급급한 모양새입니다.
'구독제 차별화' 고심
쿠팡이츠는 배달앱 시장 후발주자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요기요를 제치고 업계 2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여전히 배달앱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우아한형제들은 압도적인 1위입니다. 배달의민족 시장 점유율은 6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쿠팡이츠는 아직 20%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배달의민족이 쿠팡이츠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와우 멤버십' 때문입니다. 일찌감치부터 유료 멤버십을 도입한 쿠팡은 확고한 충성 고객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와우 회원 수는 1400만명에 달합니다.
배달앱 시장에서는 쿠팡이츠가 후발주자지만 유료 멤버십 측면에서 배달의민족이 후발주자입니다. 유료 멤버십 도입의 효과는 '락인(lock-in)'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유료여도 그 금액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고객들은 멤버십에 가입할 것이고 고객들은 이 혜택을 계속 받으면서 다른 경쟁사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쿠팡 와우 멤버십을 쓰는 고객이라면 굳이 배민클럽 같은 별도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을 겁니다. 쿠팡 와우 멤버십 가입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배민클럽 가입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와우 멤버십의 경우 쿠팡이츠 무료배달 외에도 다양한 혜택이 따릅니다. 이커머스인 쿠팡, OTT인 쿠팡플레이 등의 혜택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고민이 길어지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서비스는 사실상 배달앱 단일 서비스뿐입니다. 유료 멤버십을 도입한다해도 무료배달, 음식값 할인 이외의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멤버십 가격 책정이 어려운 것도 이때문입니다. 쿠팡 와우 멤버십은 현재 7890원인데요. 쿠팡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주기 어려운 배달의민족은 가입비를 아마도 이보다 낮게 책정해야겠죠. 쿠팡이츠에 밀린 요기요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기요는 유료 구독 서비스 '요기패스X'를 운영 중인데, 월 9900원이었던 구독료를 지난해 11월 4900원으로 내린 데 이어 지난달부터는 2900원까지 조정했습니다.
만약 멤버십 가격을 너무 낮게 정한다면 고객 혜택을 위한 비용을 우아한형제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혜택을 줄이면 고객이 멤버십에 가입할 유인이 없겠죠. 우아한형제들이 유료 멤버십을 구체화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배달의민족은 경쟁자 없는 1위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양상이 조금씩 달라질 전망입니다. 사실상 이름만 공개된 것이나 다름 없는 배민클럽이 본격적으로 유료 가입을 받기 시작할 때 배달앱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죠. 추후 배달앱 시장이 어떤 식으로 재편될지, 또 어떤 신규 서비스가 나올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겠네요.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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