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 사태, 그는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세상읽기]

한겨레 2024. 5. 29.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최근 라인야후 사태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터라 때마침 열린 5월26일 한-일 정상회담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먼저 라인야후 사태가 양국 간에 불필요한 현안이 안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네이버의 지분매각 요구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는 어디까지나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를 요구한 것이라고 받았다. 당혹스럽다. 일본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윤 대통령 발언에는 주어도, 사태의 책임 소재도 모호하다. 총무성의 행정지도 공문이 엄존하고 네이버와 야후 쪽에서도 인정했는데 봉합에 급급한 모습이다. 게다가 왜 전 국민의 최대 관심사를 대통령이 아닌 관계자 입을 빌려 들어야 하나.

양국이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순차적으로 물어야 할 핵심 질문이 세가지 있다. 우선 라인야후 보안 사고의 중대성 파악이다. 그러나 총무성의 무리한 지분매각 요구는 한국에서 사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실태 파악 논의를 걷어차고 반일정서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국내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우리도 겪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지난 4월 일본 개인정보위가 네이버에 대한 공동조사 의향을 묻는 실무 차원의 메일을 보냈을 때 공식 문서가 아니라며 답하지 않았다. 한국 개인정보위도 외국 정부에 외국 기업 관련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고 이번 경우는 그 반대 사례다. 만일 그때 응했다면 한·일 관계당국 간에 핵심 질문 세가지를 실무적으로 파악하고 한·일 정보보호 협력 기반도 다질 수 있었는데 오판으로 실기했다.

두번째 단계는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한 보안강화책의 실효성 파악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총무성의 이례적인 지분매각 요구가 라인야후의 보안체제 강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검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간과한 일본 정부 내 엇박자에 주목하게 된다. 라인야후에 대한 총무성의 두차례(3월5일, 4월16일) 행정지도는 모두 자본관계 시정을 요구했지만, 일본 개인정보위의 두차례(3월28일, 5월22일) 행정지도는 그런 요구가 일절 없다. 그러니 라인야후가 동일 사안으로 두 기관에 각기 보고한 것도 의아하나 총무성에는 자본관계 시정을 관계사에 요청했다고 보고한 반면, 개인정보위에는 일절 관련 내용 보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명을 요구하고 무리한 것으로 판명되면 공식적인 시정과 재발 방지를 촉구해야지 대통령이 나서 아닌 것으로 안다고 유야무야 흐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경제안보와 결합된 21세기 보호주의의 특이점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데이터 주권, 플랫폼 주권, 인공지능 주권 시대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전통적 보호주의의 중핵은 상품에 대한 수입 관세다. 그러나 오늘날의 보호주의는 훨씬 복잡하고 모호해졌다. 보호 대상의 외연은 상품에서 서비스, 투자는 물론이고 첨단기술, 데이터, 공급망 등에 이르기까지 대폭 확대되었다. 더욱이 보호주의가 진영화되었다. 진영 간에 안보를 명분으로 반도체, 인공지능, 데이터와 같은 이중용도 기술의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틱톡 배제가 이것이다. 하지만 진영 내 보호주의도 만연하다. 일본의 라인야후 제재에 가려진 것이 이것이다. 일본 정부의 지분매각 요구에는 정보 사고를 낸 한국 기업에 자국 데이터와 플랫폼을 의존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과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다.

설령 총무성의 지분매각 요구가 철회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 5월10일 논란 많은 ‘중요 경제안보 정보의 보호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상 중요 정보에 접근하는 민간사업자를 배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행정지도가 아닌 법에 기반한 네이버 배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추후 일본이 안보를 명분으로 석연치 않게 외국 기업을 차별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명토 박아야 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도 일본처럼 포괄적인 경제안보법이 필요한지, 한·일 간에 관련 협력과 공조가 가능한지 공론화해야 한다. 경제안보 시대에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자국민과 기업을 보호할 의지와 역량을 갖춘 국가를 요구한다. 그래서 묻는다. 그는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