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국인] "하늘 일이 천직"… 에어프레미아 1주년 흑자의 숨은 공신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2024. 5. 29.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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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최현철 에어프레미아 뉴욕 지점장
최현철 에어프레이마 뉴욕지점장은 항공사 근무를 천직으로 여기는데 그 세가지 이유로 첫째 공항에서 에너지를 얻고 둘째 승객들로부터 이야기를 얻을 수 있으며 셋째 운항을 통해 얻는 인연을 바탕으로 큰 직업적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말 그대로 행복 그 자체다.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정착키로 한 그가 15년간 몸담았던 국적 항공사를 그만두고 맞은 일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무척 감사했다.

하지만 뭔가 텅 비어버린 가슴을 새 일터가 채워주진 못했다. 그는 2021년 6월부터 미국 서부에서 한국 요식업과 관련한 스몰 비즈니스 총괄 디렉터를 맡았다. 하지만 일 자체가 낯설기도 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상황 때문에 성과가 더뎠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몰려온 직업적 향수였다.

최현철 에어프레미아 뉴욕지점장은 사실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석·박사를 이수해 후배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졸업 후 취직하지 않고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학업이 아니라 교내정치에 관여하는 임무가 신입 박사 과정 인원들에게 주어지곤 했다. 모시는 스승의 지도 방향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던 사실이다. 그걸 깨닫자마자 미련없이 도미를 결심했다.

인디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끝낼 무렵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문이 열렸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의 지시로 파견된 해외인재 유치단의 입사 제안을 받은 것이다. 경상도 사람이던 그가 전라도 순혈주의를 깨자는 항공사 오너의 기치 덕분에 2006년 1기 인재로 선발됐다. 생각지도 못하던 하늘 일을 천직으로 만난 셈이다.

첫 부서는 전공대로 사내 HR(인재개발) 부서였다. 처음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나보다 높은 직급의 고성과자들에게 해외 유학 기회를 지원하면서 값진 네트워크 기회를 얻게 됐다. 대기업이다 보니 기능적으로 일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차세대 리더들을 만나 성장 기회를 얻고 그들의 장단점을 구별할 수 있던 것이 성장의 큰 자양분이 됐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리더십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사람 중심의 조직에서는 인사가 만사라는 걸 깨달은 기간이다.

그 무렵 승무원이던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헌데 아내와 대화하다 보면 실무와 지원 파트의 괴리가 꽤 커보였다. 이론과 실제 현장의 차이였다. 고지식하게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가끔 혼이 나면서 현장을 직접 체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원부서에만 있다보니 고객 대면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작은 실무를 경험하지 못했고 뜬구름 잡는 훈수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과장직으로 인천공항 수하물 및 탑승수속 관리그룹장을 맡았고 이후에 필리핀 마닐라에선 공항 오퍼레이션을 배웠다. 현장의 매력에 푹 빠져들 때쯤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소장을 맡았다. 공항소장으로 일한 4년은 프론트-백 오피스에서 10여년 간 쌓은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기회였다.

최현철 에어프레미아 뉴욕지점장은 승무원 출신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 2남 1녀와 함께 지난 2023년 초 서부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동부 뉴저지 하워스로 이동해 생활하고 있다.
그가 항공사 지점장을 보람되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미주노선을 운영하는 국적 항공기의 경우 대형 항공기로 약 300명의 인원을 수송하기에 이른바 '기재(機在) 메리트'가 있다. 한 번에 오가는 인원이 수백명인 경우 그 가족의 친지까지 합하면 1000명이 넘는 인원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된다. 일단 많은 이들과 공항이 갖는 에너지 자체가 일하는 순간순간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둘째는 사람과의 인연이다. 수년 혹은 수십년 만에 헤어졌던 지인을 만나는 이들과 자식을 위해 보따리 보따리 짐을 챙기는 부모, 유학을 끝마치고 금의환향하는 인재들까지 장거리 비행기에 타는 승객 중에는 사연없는 이들이 없다. 직업을 영위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마지막은 직업적 성취다. 많은 고객과 인연들이 갖는 스토리가 하나하나 고유할진데 그들의 필요를 들어주고 안전하게 대륙을 건너게 해주다보면 인연의 가치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항상 고객마다 긴급한 문제가 생기고 비행을 돕다보면 상당한 고충이 있지만 비행을 무사히 마친 후에 갖게 되는 보람은 어떤 일과도 비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지점장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포기한 것은 5학년, 4학년, 1학년에 재학하면서 미국에 적응한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버지로서 미국교육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직업을 이유로 한국 이주를 강요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른바 '기러기 아빠'를 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있을 수도 없었다. 천직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런데 딱 1년여 만에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2022년 10월부터 미주 노선 취항을 목표로 하고도 팬데믹 시기 승객을 태우지 못해 화물만 나르던 새 국적 항공사 에어프레이아(Air Premia)가 미국 동부 취항(뉴욕~인천)을 앞두고 지점장급 인사를 물색한 것이다. 하지만 2023년 초 에어프레미아는 뉴저지 뉴왁(Newark)공항 취항을 발표해 두고서도 사무실 하나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최현철 에어프레미아 뉴욕지점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을 포함한 6명의 뉴욕지점 임직원들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CC에서 열린 취항 1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노선권은 확보했지만 화물과 달리 승객을 실어나르기 위해선 까다로운 미국공항들과 소통하면서 현지 공항당국의 승인을 이끌어낼 실무 노하우가 있는 지점장이 필요했다.

항공사 복직을 바랐던 최 지점장과 실무자의 노하우가 필요했던 에어프레미아의 만남도 결국 '인연'을 통해 맺어졌다. 그가 아시아나 HR 부서에서 유학 지원을 맡았던 인물이 자리를 소개한 것이다.

서부 산호세에서 가족들과 뉴저지로 이주한 최 지점장은 뉴왁공항에서 운항 허가를 위해 두 달간 공항실무처 문턱을 닳게 했고 에어프레미아는 5월 말 취항에 성공했다. 어렵게 취항을 했지만 에어프레미아는 기존 국적 항공사보다 넓은 좌석과 백만원대 중반의 미국노선 가격을 무기로 첫 취항편부터 95% 이상의 예약률을 기록했다.

에어프레미아는 지난해 매출 3751억원에 영업이익 186억원을 기록하면서 미국 취항 첫 해부터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올해는 하반기에 보잉 787-9기 2대를 추가로 들여 매출 5000억원을 넘어선다는 목표다. 기존 양대 항공사가 과점하던 시장에 메기가 되면서 소비자 편익을 높인 것이 성장의 주요한 배경이 됐다.

실제로 뉴욕 생활권에 사는 교민들에게는 존에프케네디(JFK)공항에 1시간 반 이상 걸리던 입국 수속이 25분 수준으로 줄어들고 기존 항공사 대비 최대 절반 이하 수준인 가격적 이점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최현철 지점장은 "취항 2년 차인 올해는 지역사회에 후원을 늘리고 현재 12개인 제휴 여행사를 더 늘려 서비스를 다양화하려 한다"며 "천직의 기회를 다시 얻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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