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아파트나 똑바로 지어라" [돈앤톡]

이송렬 2024. 5.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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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 새로 달아
"이름 바꾸면 뭐하냐" 쓴소리 되짚어봐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주거 형태. 바로 아파트입니다. 똑같이 생긴 가구가 층층이 쌓여 한 동이 되고, 이런 동들이 모여 한 단지가 됩니다.

주택 등 다른 집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겉모습이 특별하진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수년간 특화 설계니 1층 특화니, 다양한 설계를 내놓으면서 바뀌곤 있지만 크게 보면 미약한 변화에 불과합니다.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 내 아파트가 다른 사람 아파트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이름뿐입니다. △자이(GS건설) △래미안(삼성물산) △힐스테이트(현대건설) △푸르지오(대우건설) △e편한세상(DL이앤씨) 등 건설사 브랜드가 집의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건설사들은 많습니다. 중견 건설사들도 이들 틈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 결국 20년 넘게 사용한 아파트 브랜드를 내려놨습니다.

에피트 전속모델 임시완이 등장한 ‘아파트의 새이름’ 런칭편 광고 이미지. 사진=HL D&I한라


HL D&I 한라는 지난달 새로운 브랜드인 ‘에피트(EFETE)'를 내놨습니다. 1997년 세상에 나왔던 '비발디'를 27년 만에 내려놨습니다. 금호건설도 20년 동안 써왔던 '어울림'과 '리첸시아'를 뒤로 하고 새 브랜드 '아테라(ARTERA)'를 출시했습니다.

반도건설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기존 유보라에 '카이브(KAIVE)'를 붙인 카이브 유보라를 18년 만에 선뵀고, 동부건설은 브랜드 '센트레빌'은 유지하면서 BI(브랜드 아이덴티티) 리뉴얼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디에나 불편한 시선은 있습니다. 중견 건설사들의 '새 단장' 소식을 안 좋게 보는 실수요자들은 "아파트나 제대로 만들어라. 허튼 데 돈 쓰지 말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겠느냐. 이름만 바뀌는 것이다. 더는 속으면 안 된다" 등 쓴소리를 합니다.

단순 '안티'로 치부하자니 찜찜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수요자들은 최근 몇 년 1군 건설사의 붕괴 사고와 수백개의 하자가 쏟아지는 부실시공 등을 직접 봤습니다. 

A 건설사가 인천에서 짓던 아파트에서 주차장이 무너졌고, B 건설사가 광주에서 짓던 아파트 일부 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6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입주를 앞둔 아파트에서 규격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계단을 깎았고, 외벽이 휜 아파트도 나왔습니다. 이들 단지가 '내가 입주해야 할 아파트'였다면 정말 끔찍합니다. 수요자들의 불신이 커질 만합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최근까지 건설업계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실수요자들이 이름을 바꾸는 데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호건설 새 주택 브랜드 아테라(ARTERA) BI. 사진=금호건설


'아파트나 제대로 만들어라. 허튼 데 돈 쓰지 말고'에서 주목할 것은 '허튼 데 돈 쓰지 말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중견 건설사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변화에 나선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기존 브랜드보다 (그전에 부실하게 지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더 튼튼하고 나은 집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겼다"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쌓아온 인지도를 내려놓고 변화를 꾀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더 위험한 일"이라면서 "힘이 약한 브랜드를 끌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 뭐라도 해봐야 새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도태되는 것과 마찬가지"고 말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선 집을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로 규정합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단 뜻입니다. 건설사들은 '안전한' 집을 '잘' 만들 필요가 있겠죠. 업의 본질을 다시 고민할 때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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