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정원 한명숙 전 총리 불법사찰 인정했지만 국가배상 안된다 왜?

국정원, 2009년 '특명팀' 통해 한 전 총리 뒷조사 비난 여론 조성
법원 "국가 불법행위 인정하지만, 국가배상 청구 시효 5년 지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인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5.2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국가정보원의 사찰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국정원의 불법행위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5년의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201민사단독 김효연 판사는 지난 24일 한 전 총리가 "3100만 원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한 전 총리는 국정원 소속 공무원들이 2009년쯤부터 '특명팀'을 활용해 뒷조사하고, 인터넷에 한 전 총리를 비방하는 글을 게시해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며 2021년 국가를 상대로 31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사건을 심리한1심 법원은 한 전 총리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봤다.

김 판사는 "정부조직법과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직무를 정하면서, 국내 정보의 경우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에 한해서면 수집·작성 및 배포를 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했다"며 "증거 등을 종합하면, 국정원의 원고(한 전 총리) 사찰 행위는 국정원의 업무 범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특정 조직이나 그 조직의 대표를 동원해 국정원이 수립한 전략과 계획에 따라 원고를 공격·비판하고, 법령을 위반해 원고를 손해를 입힌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그러나 이같은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인 5년이 지났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배상법에 따른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국가재정법에 따라 시효로 인해 소멸한다.

김 판사는 "국정원 공무원들의 사찰행위 중 가장 늦은 행위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 불법행위 시점은 2012년 5월 7일"이라며 "이 사건 소송은 2021년 4월 21일에 제기됐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 채권은 소 제기 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고 밝혔다.

또 "원고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가산점을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취급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 측은 재판 과정에서 "국가가 손해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판사는 "국가에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이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오히려 이 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은 금전배상을 받기 위함보다는 원고에 대한 국정원 공작행위의 위법성을 법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취지라고 보인다"며 "이 사건의 사찰 행위는 위법한 것으로 판단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찰 행위를 지시한 국정원 간부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 2020년 국정원법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내용으로 전부 개정된 사실, 국정원장이 2021년 8월 '국회 특별 결의안 통과에 따른 국민 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과거 불법사찰과 정치개입 관련 피해자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사실 등을 보면, 이같은 국가의 후속 조치 과정에서 상징적으로나마 원고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전보는 어느 정도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