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폐지 위기 앞에서 학생인권‘법’ 외치는 이유
학생인권조례 폐지 위기가 닥친 지금, 조례를 넘은 ‘학생인권법’ 제정을 환기해보고자 한다. 학생인권법 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0년과 2005년 ‘노컷운동(두발자유화 온라인 서명운동 및 거리집회·학내시위)’이 있었고, 2003년 학교 체벌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2004년에는 서울 대광고 종교 자유 투쟁 등이 일어났다.
교육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가령 두발 규제에 대해 ‘두발 규정은 각 학교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방침을 고수했다. ‘학생의 인권은 물론 지켜져야겠지만 학칙과 학생 지도는 학교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며,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일관된 태도였다.
교육부의 외면 속에 학생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시도가 학생인권법이나 학생인권조례 같은 ‘입법’안이었다. 학생인권법에 대한 최초의 국회 발의는 2006년 3월에 나왔다. 제17대 국회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던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의 자유, 강제 자율학습 금지, 소지품·일기장 검사 및 압수 금지, 차별 금지 등을 명시했다.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3년마다 학생 인권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2007년 9월,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학생인권법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 학생이나 양육자, 인권 전문가는 없었다. 교사 및 교원단체 관계자 4명만 진술인으로 선정됐다. 2007년 11월, 국회 교육위원회는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원안의 구체적 조문들은 모두 삭제하고 제18조의4(학생의 인권 보장),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초·중등교육법에 신설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생인권법이 단 한 줄의 원칙적 선언으로 요약됐다. 이후 제18대 국회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순영 의원 원안과 거의 비슷한 학생인권법을 재차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
학생인권법이 국회에서 막혀 있는 사이 2006년 광주, 2008년 경남 등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일어났다. 2010년에는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했다. 2013년까지 광주·서울·전북 총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07년 말 신설된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생의 인권 보장) 조항이 학생인권조례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근거 역할을 했다.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의 아이디어는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으며, 학생인권법 제정 노력이 남긴 성과가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정착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연이어 벌어지는 동시에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한 준비도 멈추지 않았다. 2012년 출범한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2017년 만들어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은 학생인권법 제정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이 단체들이 말하는 학생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은 크게 두 가지다.
문재인 정부 때 빛 보는 듯했지만···
첫째,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조례가 아닌 법률을 제·개정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체벌의 완전한 금지 등이다. 또한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이나 비민주적 과정으로 만들어진 학칙을 교육청 등 감독기관이 시정할 수 있으려면 학칙을 학교장 재량으로 두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8조를 개정해야 한다.
둘째, 근본적으로 조례는 지역의 자치법규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만으로는 지역별로 인권 보장 여부와 수준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가령 어느 지역은 학생인권조례의 효과로 머리카락 길이가 자유화된 반면,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학교는 10~20년 전과 별다를 바 없는 두발·복장 규정으로 단속하는 일이 벌어진다.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 보편적으로 보장받도록 하려면 법률이 필요하다.
학생인권법 추진은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지지부진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시기 반짝 빛을 보는 듯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아동인권법 제정’을 공약했고, 시민단체의 질의서에 학생인권법에 찬성한다며 ‘임기 초반 과제’라고 답했다. 2018년 교육부는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화 방향 및 이슈 탐색’이라는 주제의 정책연구를 의뢰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학생 인권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 등을 제안했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9년 11월 ‘아동권리포럼’에서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 인권 문제는 교육지방자치 사안이지 중앙부처나 법률이 다룰 필요가 없다며, 교육청과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10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입법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2021년 11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함께 논의해 마련한 법안이다. 두발 규제, 자율학습 강요 등 대표적 학생 인권 침해행위의 금지와 더불어 학생회의 자치권·참여권 보장, 교육청에 학생 인권 침해 구제기구 설치, 교육청에 학생 인권 실태조사와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 등의 책무 부과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 법안도 수년간 국회 교육위원회에 잠들어 있다.
2024년 3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아닌 개별법·특별법의 형태로는 처음 나온 법안이다. 이 법안은 여러 지역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참고했다. 학생 인권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해 정책 수립, 침해 구제 등을 해야 함을 명시했다. 박주민 의원안에 비해 학생의 권리 내용은 더 상세히 서술한 반면,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보장 등 초·중등교육법 개정 사항은 담지 못했다.
강민정 의원의 학생인권특별법안에 일부 교사단체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다. 특히 ‘누구든지’ 학생 인권 침해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게 한 조항이 문제가 됐다. 제3자에 의한 구제 신청 등이 남발될 수 있다고 봤다. 또 학생인권위원회에 교사·교육전문직·법조인 외에도 ‘시민단체 추천을 받은 사람’이 위원으로 포함되게 한 부분에 대해 교육 현장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걱정했다.
모든 국민은 공교육 체계에서 성장한다. 일반 시민을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며 배제하는 것이 정당할까? 교사가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방과 후에는 누군가의 양육자이며 일반 시민일 수 있듯, 일반 시민도 모두 학생이었고 때로 양육자이며, 다른 장면에서는 교육에 대해 공적 관심과 참여가 가능한 사람일 수 있다. 직업적 교사만이 교육활동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고 교사만이 교육활동을 결정·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면, 인권의 보편성과 교육의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개정된 ‘교권 보호 5법’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아동학대의 책임을 묻지 않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당한 교육활동’의 기준이 모호하다. 학교에서 숱하게 갈등과 분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그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사회적 기준이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법이 제정되어 지켜야 할 학생 인권의 기준이 확립된다면, 교사의 교육활동 정당성도 더욱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법의 목표는 결국 교사든 학생이든 기본적인 인권의 원칙 위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학생인권법이 제정되면 민원 제기나 법적 분쟁도 줄어들 수 있다.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고 사법적 방법을 찾는 배경에는 학교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학생들은 어느 지역인지, 사립인지 공립인지 등에 따라 다른 기준의 학칙을 적용받는다. 교사 역시 지역 또는 학교 분위기에 따라 교육활동이 긍정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한다. 인권침해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어느 학교에서는 인정되고, 다른 학교에서는 학생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듣고 민원 대상이 된다.
정당한 교육활동은 학생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학생 인권의 기준을 분명히 하면 교육활동의 사회적 정당성도 확보된다. 학생이 어느 학교에 다니든 동일한 인권 기준에 따라 존중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학부모를 포함해 학교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는 학교, 이것이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그리는 학교의 모습이다.
조영선 (고등학교 교사)·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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