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의 배터리ON] "中, 리튬배터리 표준 제시하는 이유는?"
[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중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2024년도 리튬배터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이 국내 배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지난 8일 '리튬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과 '리튬배터리 규범 공고 관리 방법'의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내놓은 2021년도의 개정판으로, 중국 내 배터리 기업의 맹목적인 생산 증대를 자제하고 기술 혁신과 제품 품질 향상, 생산 원가 절감에 주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 초안의 특징은 '품질'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요건으로는 매년 전체 매출의 3% 이상을 연구개발과 공정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과 중국의 행정 단위인 성급 또는 중앙정부로부터 독립 연구기관, 엔지니어 실험실, 기술센터, 신기술 인증, 발명 특허를 보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연간 실제 생산량이 설비 능력의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했습니다.
이 요건들은 지난 2021년도에 처음 발표한 내용과 동일한데 이번 개정판에도 다시 강조됐습니다. 중국 정부가 배터리 산업의 무분별한 양적 확산보다는 질적 성장을 촉진하는 게 세계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지켜나가는 방법이란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 중국의 주요 배터리 제조기업인 CATL과 BYD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CATL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4.59%를 연구개발에 투자했습니다. BYD 역시 지난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6.58%를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이 아닌 매출의 일정 부분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는 것은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 이번 개정안의 특징은 리튬배터리의 성능지표 기준요건을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전기차용 삼원계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230Wh/㎏ 이상, 배터리 팩의 에너지 밀도는 165Wh/㎏ 이상으로 제시했습니다. 2021년에 규정한 삼원계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당 210Wh 이상, 팩 에너지 밀도가 ㎏당 150Wh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 성능 지표는 각각 9.52%, 10% 높은 수치입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주력하는 하이니켈 NCM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300Wh/㎏이 넘는 데다 중국 역시 200Wh/㎏ 중반 이상대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하는 만큼 최소한의 NCM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준선을 충족하거나 초과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기준선 이하의 성능을 내는 중국업체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국내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파우치형과 각형 등에 따라 NCM의 에너지 밀도가 차이는 나겠지만 중국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200Wh/㎏ 중반대는 나오니까 이 기준선을 제시한 것 같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은 없어도 중국기업들에게 품질 개선을 하도록 하는 일종이 압박 역할을 할텐데 중국 정부도 자국 내 공급 과잉에 대해선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개정 초안에서 전기차용 LFP(리튬인산철)의 에너지 밀도는 165Wh/㎏ 이상, 배터리 팩의 에너지 밀도는 120Wh/㎏ 이상으로 제시했습니다. 2021년도 기존 개정안보다 각각 5Wh/㎏를 높였습니다. CATL의 셀투팩 기술을 탑재한 LFP 배터리가 205Wh/㎏이며, 중국 BYD의 2세대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90Wh/㎏인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기본적인 품질과 성능 수치를 못 박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번 중국의 개정안에 대해 CATL이나 BYD 등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기술 혁신과 제품력 강화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할 뿐 아니라 생산 공정 전반의 효율을 높여 원가를 낮춰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배터리 업계의 경쟁력도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장샹샹 중국 국제스마트운반탑재기술협회 사무총장은 "현재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주요 기업은 파나소닉, LG에너지솔루션 등 10개사에 불과해 시장 집중도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중국에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업이 50여개가 있는데 이번 문건을 통해 기업 규모가 영세하거나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이 도태되면 배터리업계의 대기업 성장이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의 무역장벽이 심화되는 상황인 만큼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소수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지원 정책을 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은 늘 처음에는 기업들이 마음대로 역량을 발휘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그러나 과잉 생산 신호가 보이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왔기에 배터리도 예외일 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역시 "CATL이나 BYD가 소위 안방 호랑이가 아닌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결국 품질이 열쇠라는 것을 중국 정부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라며 "중국은 어려운 곳을 지원해 모두가 같이 잘 살자는 기조가 아니다. 결국 자국 배터리기업들의 옥석을 가려 세계 1등을 만들자는 게 그들의 일관된 정책 방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으면서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향상된 품질, 가격 경쟁력이라는 무기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미 중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업체들에게 기술 혁신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향후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에 대한 평가는 아직 국내에서 천차만별"이라며 "니켈 함량이 90% 이상인 하이니켈 배터리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은 반면 LFP로 인해 평가가 달라진 것도 사실이어서 내부에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예의주시하는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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