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주기를 바랄 뿐[편집실에서]
며칠 전 점심을 먹고 경향신문 본사에서 가까운 서울 종로 거리로 나가봤습니다. 대로변에도 듬성듬성 빈 가게가 보였습니다. 새 주인을 찾아 공사하는 곳도 있었지만, 빛바랜 유리창 위에 ‘임대문의’라고 쓴 종이만 나풀거리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얼마 전 연재를 마친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는 수많은 명대사가 나옵니다. 그중에서 개인사업자, 즉 자영업자들의 가슴에 박히는 대사가 있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영업 3팀 오상식 과장은 퇴사한 선배와 밥을 먹으며 안부를 묻습니다. 그 선배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 재산을 투자해 피자집을 열었지만,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선배는 오 과장에게 말합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자영업자는 <미생>에 나온 바로 그 지옥 한복판에 있습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는 ‘3고로 쓰러지는 자영업자’를 표지 이야기로 다룹니다. 주간경향 창간 32주년을 맞아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출퇴근길에 파리만 날리는 가게들을 보면 자영업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유행기 때 받은 대출의 상환 기간이 돌아오면서 거대한 ‘부메랑’을 맞고 있습니다.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해 이자 부담은 2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지난 5월 12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신용평가기관인 나이스평가정보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335만9590명이 총 1112조7397억원의 대출잔액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 신용대출을 제외하고 개인사업자 명의의 대출을 받은 경우만 합산한 것이 이 정도입니다. 대출 규모는 코로나19 직전이었던 2019년 말(738조641억원)보다 50.8% 늘었습니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대출이 있는 사람의 비중도 2019년 약 37%에서 올해 3월 말 60%로 증가했습니다. 규모뿐만 아니라 부채의 질도 악화했습니다. 빚을 빚으로 돌려막는 다중채무가 많아졌고, 연체율도 올라갔습니다. 제도권 밖의 금융을 이용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자영업자들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자영업자들이 ‘지옥’을 탈출해 그나마 나아 보이는 ‘전쟁터’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난 2월 나온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7만4000명 증가한 207만3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자영업자(568만9000명) 중 36.4%로 3분의 1을 넘어섰습니다. 인구 고령화와 은퇴 후 생계형 창업·재취업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노인 일자리와 복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은 이제 자영업 말고는 더 갈 곳이 없습니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입니다. 자영업자들은 장기분할 상환이나 일부 이자 탕감을 요청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앞뿐만 아니라 옆과 뒤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부디, 자영업자들이 잘 버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