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전쟁’ 부추긴… 무분별 전기차 충전 구역 확충 [현장, 그곳&]

이진 기자 2024. 5.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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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설비 개수 채우기 편법 난무, 기존 주차장 점령… 주차난 심화
전기차 공간만 ‘텅텅’ 실효성 지적... 별개의 충전 설비 전용 부지 필요
道 “법률 개정 전까지 해결 난망”
27일 도내 한 주차장에 전기차 주차구역만 텅텅 비어있다. 홍기웅기자

 

“막무가내로 기존 주차 공간을 전기차 충전 구역으로 바꾸면, 어디에 차를 세워야 하나요?”

지난 27일 오후 9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천천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 한 차량이 한참 동안 빈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엔 차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어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전기차 충전 구역은 텅텅 비어있었다. 이곳은 지난달 기존 4천여면의 주차 공간 중 200여면을 전기차 충전 구역으로 바꿔 일반 차량을 위한 주차 공간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주민 나모씨(58·여)는 “전기차 충전 설비가 들어온 이후 주차 공간이 줄어들어 밖에 차를 대기 일쑤”라며 “내 집에 내가 마음 편히 주차를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역정을 냈다.

같은 날 오후 10시께 의왕시 오전동의 주차장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주차장을 넘어서 도로 위에도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었고, 주차된 차들 앞으로는 다른 차들도 이중주차를 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전기차 충전 구역은 텅텅 비어있었다. 주민 이정배씨(47)는 “가뜩이나 이전부터 주차하기 힘들었는데 기존 주차 공간을 막무가내로 전기차 충전 구역으로 바꾸면 어떡하냐”며 “전기차 자리는 맨날 텅텅 비어있지 않냐”고 토로했다.

전기차 전용 부지를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 주차구역에 충전 설비 개수만 채우려는 편법이 경기도에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경기도에 따르면 친환경자동차법상 전기차 충전 시설은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에 설치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1월부터 제정된 법에 따라 구 건축물은 2% 이상, 신 건축물은 5% 이상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이 같은 전기차 충전 구역은 8만6천여곳으로 총 주차장(52만여곳) 중 16.5%를 차지한다. 6면 중 1면이 전기차 충전 구역이라는 것인데, 전기차 전용 부지를 증설하는 것이 아닌 기존 주차 자리에 전기차 충전 설비를 막무가내로 설치하고 있어 기준치보다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공동주택의 경우 구체적인 전기차 충전 구역의 수를 전기자 보급 현황, 도로 여건 등을 고려해 지자체가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고려되지 않고 충전 구역만 급급하게 늘리고 있어 시민들의 불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기존 주차 공간에 전기차 충전 설비를 설치하면 주차난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전기차 과도기인 만큼 예산을 편성해 전기차 충전 설비 전용 부지를 따로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새로운 부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아 기존 주차 구역에 전기차 충전 설비를 설치하고 있다”며 “법률이 새롭게 개정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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