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할 ‘트랜스젠더 난민 인정’…아쉬운 ‘원어민 강사 HIV 검사’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년간 이주민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개선한 ‘디딤돌 판결’과 이주민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 ‘걸림돌 판결’을 선정해 발표했다.
변협은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과 공동으로 28일 서울 서초구 변협 회관에서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대회’를 열었다. 2022~2023년 디딤돌·걸림돌 판결로는 총 19개(디딤돌 5개, 걸림돌 7개, 주목 7개)가 선정됐다.
디딤돌 판결의 대표 사례로는 2022년 서울고법이 트랜스젠더를 난민으로 인정한 판결이 소개됐다.
말레이시아인 A씨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10세 무렵부터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형성됐다. 이후 2014년 ‘여성처럼 보이게 하고 그러한 옷을 입은 혐의’로 체포돼 말레이시아 법원으로부터 950링깃(약 27만원) 벌금형과 7일간의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15년 10월 말레이시아를 떠나 2017년 7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출입국 당국과 1심 재판부는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A씨가 난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트랜스젠더라는 성 정체성은 그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면 불이익을 당하기 쉬울 뿐 아니라 A씨의 국적국에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로, (한국 난민법상 난민 기준인)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성 정체성에 대한 박해를 근거로 트랜스젠더 난민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원어민 강사에 대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의무 검사’ 관련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건은 걸림돌 판결로 소개됐다. 앞서 법무부는 2007년 ‘외국어 회화지도 강사에 대한 체류관리 강화 방안 지침’을 개정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원어민 강사가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면 HIV 검사 결과를 내도록 했다. 원고인 B강사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직장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2020년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보장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무부 지침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및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지적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 권고를 내리면서 2017년 철회됐다. 이런 조치 이후에도 재판부는 법무부 지침이 당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마련된 것이므로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송진성 법률사무소 지율 S&C 변호사는 “법원이 출입국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어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려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외국인 대상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과정에 대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내린 판단도 걸림돌 판례로 꼽혔다. 지난해 9월 헌재는 영주, 결혼이민 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의 월별 보험료 하한을 ‘전년도 가입자 평균 이상’으로 정한 것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청구인 측은 이 같은 지침이 재산과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아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공권력에 의해 근거 없이 평균이 규정돼 이에 미치지 못하거나 평균에서 벗어난 이주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이 됐다”고 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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