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드리운 尹의 흔적…검사 때 쓰던 번호로 이종섭에 전화

이혜영 기자 2024. 5. 2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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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첩 기록 회수 당일인 작년 8월2일 개인번호로 3차례·약 18분 통화
尹-李 통화 후 이첩 기록 회수되고 박정훈에 보직해임 통보
국방부 채상병 사건 재검토 결정 전날인 8월8일에도 전화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채상병 순직 사건 기록이 경찰로 이첩된 당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에 걸쳐 18분 넘게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외압 의혹 출발점인 'VIP(대통령) 격노설'을 비롯해 사건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진술과 증거가 잇달아 나오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윗선' 수사도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28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측이 항명 혐의 관련 군사법원 재판부로부터 확보한 통신사실 조회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2일 낮 12시7분과 12시43분, 12시57분 3차례에 걸쳐 이 전 장관에게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해당 번호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사용하던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장관 간 통화는 각각 4분5초, 13분43초, 52초간 총 18분40초에 걸쳐 이뤄졌다. 당시 이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해외에 있는 이 장관에게 개인전화를 이용해 세 번이나 연락할 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같은 날 오전 10시30분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이 전 장관은 이첩 상황을 보고받은 상태에서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두 번째 통화가 이뤄지는 사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는 보직 해임이 통보됐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항명 혐의로 박 전 단장을 입건한 뒤 경찰로부터 사건 회수를 결정, 이날 오후 7시20분께 경북경찰청에서 사건을 회수했다. 이에 앞서 같은 날 오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경북경찰청과 통화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로부터 엿새 뒤인 8월8일 오전 7시55분에도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간 통화했다. 

이튿날인 8월9일 국방부는 채 상병 사건 재검토를 결정했고, 같은달 24일 대대장 2명의 범죄 혐의만 적시해 경찰에 최종 이첩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 언론 브리핑 취소 직전인 오전 11시54분께도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일반 전화를 받고 168초 동안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은 통화 이후인  11시57분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와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고 실제로 브리핑은 불발됐다.  

이날은 윤 대통령이 국가안보실·비서실 회의를 주재하며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격노했다는 'VIP 격노설'이 있었던 때로 지목된 당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 5월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로텐더홀에서 채상병 특검법 재의 표결 부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같은 통화사실은 이 전 장관의 기존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그동안 이 전 장관은 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과 연락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건과 관련해서 통화한 게 없다"고 답했다.

이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통화를 한 적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는 입장이다. 이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역과 관련한 자료 출처에 의문을 표하며 두 사람 간 통화 여부 공개 적법성에도 의문을 나타냈다.  

'윗선'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을 소환해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채 상병 조사 기록의 이첩 보류 지시와 자료 회수, 국방부 재검토 과정 전반에 부당한 직권남용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공수처는 사건 핵심 피의자인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각각 두 차례 불러 조사했다. '격노설'을 두고 진술이 엇갈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김 사령관의 대질 조사는 김 사령관의 거부로 무산됐다. 

최근 공수처는 김 사령관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그가 해병대 고위 간부와 대통령 격노설을 시사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눈 녹음파일을 확보하고 추가 진술도 얻어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 직접 전화한 내역까지 확인되면서 수사는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앞두고 국회를 찾은 오동운 신임 공수처장은 수사외압 의혹 수사와 관련해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열심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특검법 부결 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법과 원칙대로 계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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