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통신문에 러시아어... 한국 학생이 소수가 된 한국 학교

김수경 기자 2024. 5.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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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남초 교실 70%가 다문화
한국어 잘 안통해 진도 못나가
한국 학생 부모들 “전학 고민”
한글 못 읽을까… 러시아어로 안내 - 지난 7일 학생들이 오가는 인천 연수구 문남초등학교 정문 위에 ‘사이버폭력 로그아웃! 친구사랑 로그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현수막에는 한글 아래 작은 글씨로 러시아 키릴문자가 함께 적혀 있다. 이 학교 학생 10명 중 7명이 중앙아시아계·러시아계 등 다문화 학생이기 때문이다. /김지호 기자

인천 문남초는 전교생 590여 명 중 70% 이상이 다문화 학생이다. 정문 현수막 한글 밑에 러시아어 키릴 문자가 병기돼 있고, 가정통신문도 한국어·러시아어 2개 국어로 제공된다. 문남초 교사들은 방과 후 러시아어 공부도 한다.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학생들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다. 본지가 최근 찾은 문남초 등·하굣길에서 한국 학생과 다문화 학생들이 저마다 따로 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하굣길에 만난 다문화 학생들은 러시아어로 얘기하며 태권도 학원 버스에 올라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 다문화 학생은 전체의 20~30% 정도였다. 기존엔 중국·베트남계가 많았지만 최근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중앙아시아계도 늘었다고 한다. 이 학교 다문화 학생들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거나 학습이 더디다. ‘소수자’가 된 한국 학생들은 이들과 수업을 듣느라 수학·영어 등 진도를 잘 나가지 못한다. 수도권에서 다문화 학생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한국인 학부모들이 이런 학교 진학을 사전에 주소 이전 등으로 기피하거나 전학하곤 한다. “다문화 학생들과 분반해서 수업해 달라”는 민원도 잦아졌다.

문남초의 한 학부모는 “한국어를 러시아어로 통역해주는 보조 교사 확충이 절실하다”며 “한국인 학부모인 내가 이런 걸 바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올해 안에 딸을 전학시킬 예정이다. 다문화 학생 비율이 80%에 이르는 인근의 함박초를 비롯, 인천과 경기 안산 일대 학교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안산 원곡초의 2021년 다문화 학생 비율은 98.6%로 전교생 449명 중 6명만 한국 학생이었다.

문남초 2학년 한 학급은 학생 총 18명 중 한국 학생은 5명, 다문화 학생이 13명이다. 다른 학급도 한국 학생 7명, 다문화 학생 10명이다. 교사는 한국어로 수업하지만 러시아어 통역 교사는 부족하다. 다문화 학생들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국 학생들은 “수업 진도를 빨리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일러스트=김성규

문남초 한국 학부모들은 올 초 한국 학생과 다문화 학생을 나눠서 수업하자며 투표를 제안했다. 그러나 다문화 학생 학부모들은 한국 학생들과 교육받길 원한다며 반대해 이뤄지지 않았다. 이 학교에 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장모(45)씨는 “문남초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집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자녀들을 전학 보내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인천교육청 세계시민교육과 박상희 장학사는 “문남초는 교육청에서도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급당 다문화 학생 비율이 20~30% 수준이었을 때는 한국인 학부모들도 ‘내 아이가 외국 문화, 외국어를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며 기대가 높았는데, 다문화 학생 수가 절반이 넘어간 이후로는 한국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했다. 박 장학사는 “교원 정원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육청은 재량으로라도 추가 교원을 확보해 주려 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교사들 역시 이런 다문화 학교에 부임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성규

각종 공단이 많은 인천·안산엔 다문화 학생 비율이 40%대에서 97%에 이르는 학교가 산재한다. 서울도 올해 초 기준으로 다문화 학생 비율이 70% 이상인 초교가 2곳, 40% 이상인 곳은 중학교를 포함해 10곳이었다. 충북 청주, 전남 함평에도 다문화 학생 비율이 40~60%대인 학교가 여럿 있다.

기존 중국·베트남·태국계 다문화 학생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중앙아시아계 다문화 학생들의 유입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안산의 한 중학교 교장은 “500명대 전교생 중 다문화 학생이 2022년 초엔 20~30명 정도였는데 러·우 전쟁을 기점으로 대거 유입된 중앙아시아·러시아계 학생들이 이젠 1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 학교는 다문화 학생 입학 희망자가 속출하자 한국어 입학 시험을 도입했다. 이 교장은 “시험을 통해 다문화 학생 비율을 30%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입학을 희망하는 다문화 학생들을 전부 받았다면 한국 학생 지도에도 차질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했다. 일선 교육청과 학교 역시 학부모·학생 동반 한국어 교육 지원, 다중 언어 학습 자료 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미국 일선 학교처럼 영어와 스페인어·한국어 등을 병용하는 ‘다중 언어 교육’도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경인교대 장인실 한국다문화교육연구원장은 “한국 공동체 구성원이 다원화된 데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발·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다문화 학생들이 한국의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향후 국가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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