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구축함 누가 만드나... HD현대중-한화오션 어디 줄지 결정 못하는 정부
산업부 "방사청이 방향성 잡아야"
방사청 "업체 선정은 산업부 업무"
결정 책임 안 지려는 관련 부처들
방산공룡 갈등 격화에 "해 넘길라"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6척을 건조하는 7조8,0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누구에게 맡길지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업자 지정을 신청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수주에 사활을 걸고 상호 비방전을 벌이는 상황이라, 관련 부처들이 업체 선정에 부담을 느끼며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자칫 인도 시기를 맞추지 못해 해군 전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중순 방위사업청에 KDDX 사업의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진행할 방산업체 지정과 관련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방사청이 향후 KDDX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가 중요하고, 방사청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잡혀야 거기에 맞춰서 산업부의 업체 지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내부적으로 좀 더 검토할 사항이 있다는 취지의 회신을 산업부에 보냈다. 방사청 관계자는 "방산업체 지정 업무는 산업부 주관으로, 현재 산업부와 적극 협조 및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방사청의 방향에 따라야 한다고, 방사청은 주관 부처가 산업부라고 하면서 업체 선정 책임을 서로 '핑퐁'하고 있는 셈이다.
두 방산 대기업 왜 여태 싸우나
관련 부처가 모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방산업계 공룡'들이 전례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는 "방사청이 설립된 2006년 이후 국내 연구개발로 발주된 함정 사업에 대해 복수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서로 하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고 귀띔했다. 업계에 따르면 KDDX는 방산업체가 현재 보유한 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이후에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무기체계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KDDX 수주 여부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KDDX는 정부 발주로 2011년 사업이 시작돼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마쳤다. 한화오션은 2012년 개념설계,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를 맡았다. 기본설계 사업자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이어가는 게 업계의 통상적 수순인데,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3급 군사기밀) 등을 몰래 취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방위사업청은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수주 입찰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고, 한화오션은 강하게 반발했다. 고발전을 이어가며 두 회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만큼 상세설계 수주 여부가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진 모양새다.
결국 KDDX 사업은 기본설계 이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방사청에 따르면 KDDX 선도함이 실제 훈련이나 작전에 투입돼야 하는 시기는 2030년 10월이다. 그러려면 2028~29년 완성해 해군에 인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사청도 KDDX의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계약을 연내 체결하는 게 목표라고 지난 3월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선 이 목표가 달성되려면 늦어도 8월 전 산업부가 업체를 지정해 방사청에 넘겨야 하고, 방사청도 8월 내로 상세설계 계약의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산업부는 법적으로 6개월 내에만 업체 지정을 마무리하면 된다는 입장이라 이대로라면 11월까지, 최악의 경우 해를 넘겨도 누가 선도함을 만들지 결정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누가 유리한가... 산업부 결정에 달려
남은 시간이 빠듯한 KDDX 사업의 운명은 현재로선 산업부 손에 달려 있다. 만약 산업부가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준다면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과 수의계약을 맺고 곧바로 상세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적 잠수함에 탐지되지 않기 위한 핵심 기능을 제대로 설계하려면 적절한 시기에 외부업체에 부품을 발주해야 한다.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선도함까지 건조하는 것이 순리"라며 수의계약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산업부가 어느 한쪽 손을 들지 않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둘 다 사업에 적격하다는 점을 들어 방사청으로 판단을 넘기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렇게 방사청이 공을 넘겨 받아 경쟁입찰을 하면 한화오션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12~15년 KDDX 개념설계 탈취 때문에 방사청의 심사 점수에서 감점(1.8점)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자가 0.056점 차이로 결정된 전례를 감안하면 큰 점수다.
HD현대중공업으로선 산업부에서 선정이 마무리되는 편이, 한화오션으로선 공이 방사청으로 넘어가는 편이 좀 더 유리해 보인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단수보다는 복수 기업의 입찰 제안서를 받는 게 사업 결과물(KDDX)의 품질과 완성도를 더 높이는 방안"이라며 경쟁입찰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내 대표 방산기업들이 서로 날을 세우는 상황이 지속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해외 진출 기회가 열리고 있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특수선 업체들이 ‘원 팀’을 이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의 지나친 경쟁이 국내 방위산업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업체들은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하고, 정부 또한 갈등을 중재하며 빠르게 사업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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