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에”… 新해운동맹서 허브항 지위 잃을 듯

이정구 기자 2024. 5. 2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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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5위 해운사, 내년 2월 해운동맹 새로 꾸려
부산항 전경 /뉴시스

국내 수출입 화물의 약 4분의 3을 담당하며 한때 세계 5위 항만이었던 부산항이 위기에 처했다. 세계 2위 해운사 덴마크의 머스크와 5위 독일의 하파크-로이트가 내년 2월 새로 꾸리는 해운 동맹 ‘제미나이(Gemini)’가 아시아~유럽 노선에서 부산항, 대만 가오슝항 등을 주요 허브(hub)항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컨테이너 물동량이 줄면서 7위로 하락한 부산항과 물류 비용 상승이 우려되는 국내 수출입 기업에는 악재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2017년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 파산으로 한국 해운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물류비 부담 증가, 수출 경쟁력 약화가 이어졌는데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해상 물류는 택배 트럭이 출발지에서 바로 최종 배송지로 향하지 않고 중간 물류 터미널에 모이는 것처럼, 입지가 좋은 허브 항만에 모아 장거리 노선 대형 선박에 환적(換積)한다. 부산항이 작년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 약 2315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중 환적은 1241만TEU로 절반이 넘는다. 국내 해운업계 주요 경쟁력 중 하나가 중국·일본 등에서 넘어오는 환적 물량 처리다. 허브항에서 제외되면 부산항은 초대형 선박이 출발하는 항구가 아니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허브 항만으로 화물을 넘겨주는 역할로 축소된다. 국내 해운·항만 산업 한 해 매출액 60조원의 73%(약 44조원)를 차지하는 부산항의 위상 약화는 불가피하다. 업계에선 제조업 생산 거점이 동아시아에서 동남아로 넘어가면서 해운업 변화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부산항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해운업은 제조업 생산 물량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동남아 제조업은 계속 늘고, 부산항의 핵심 경쟁력인 미주 노선에서도 미국이 리쇼어링 정책으로 자국 생산을 늘리면서 부산항 물동량은 더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韓·대만에서 동남아로 눈 돌리는 글로벌 해운사

글로벌 해운업에서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위상 약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1월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속한 해운 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유일한 유럽 해운사인 하파크-로이트가 탈퇴를 선언했다.

해운 동맹은 선사에 허용된 일종의 카르텔이다. 동맹 기업끼리 노선, 선박, 항만 터미널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화주 상대 영업도 확대할 수 있는데, 다양한 노선 확보가 핵심이다. 그런데 하파크-로이트가 빠지면 디얼라이언스에는 일본 ONE(세계 6위), 한국 HMM(8위), 대만 양밍(10위) 등 동아시아 선사만 남게 된다.

제미나이 출범 자체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해운업의 위상 약화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다. 구교훈 회장은 “유럽 해운사들의 한국, 일본, 대만 경쟁자 없애기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하파크-로이트는 작년 HMM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인수 가능성이 없어지자 해운 동맹 결별에 나섰고, 동반자에서 경쟁자가 됐다. 특히 머스크는 2014년 ‘파멸적 경쟁’을 선언하고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추가하며 출혈 경쟁을 벌여 한진해운 등을 시장에서 몰아냈는데, 제미나이 동맹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日 고베항 전철은 피해야”

문제는 부산항 등 국내 항만이 물동량 규모나 생산성 측면에서 중국, 싱가포르 등 경쟁 항만과 비교해 장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상하이항은 연간 물동량이 4000만TEU가 넘고 닝보항도 3000만TEU를 넘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지난해 초대형(8000TEU급 이상) 선박이 항만에 들어오면 싱가포르는 시간당 컨테이너 화물을 114회 처리하지만 부산은 88회, 여수·광양은 77회 처리했다.

제미나이가 아시아~미주 노선에선 부산항의 허브 역할을 유지하지만, 신규 기항지로 중국 칭다오항을 포함한 것은 또 다른 우려 요인이다. 미주 항로는 부산항의 주력 항로인데 칭다오항 비중이 늘면 상대적으로 부산항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부산항을 오가는 대형 컨테이너선과 환적 화물이 줄면 글로벌 항만으로 경쟁력이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동북아 물류의 주도권이 부산항으로 넘어간 뒤 회복하지 못한 고베항 전철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당장 올해는 기존 해운 동맹이 유지되고, 장기 계약으로 묶인 화물도 많아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그간 머스크가 시장 질서 재편을 주도했고 다른 기업들도 따라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해운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며 “HMM 등 국내 해운사가 적극적으로 새 파트너를 찾고 국내 항만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부산항을 운영하는 부산항만공사(BPA)는 인프라 확대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진해신항에 2029년까지 약 9162억원을 투자해 컨테이너 터미널을 확장할 계획이다. 완공되면 연간 4200만TEU를 처리할 수 있는 세계 3위권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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