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격노하는 사회

요즘은 격노라는 말이 일상이 됐다. 가끔 ‘화가 잔뜩 났다’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격노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 아니었다. 격노는 사전적으로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라는 뜻이다. 한자(漢字)로는 ‘격할 격(激)’에 ‘성낼 노(怒)’다. 격하게 성(화)을 낸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어린아이와 미성숙한 어른에게서 발달 장애나 좌절감의 결과로써 생기는 폭발 또는 폭력 행위라고 규정한다.

비슷한 의미로 분노(憤怒)가 있다. 이 말 역시 몹시 분개하여 화를 낸다는 것. 화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표출하는 성격 장애를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데, 이를 보더라도 몹시 화가 난다는 의미로 분노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격노했다는 것은 매우 급격하게 화를 내는 것이니까, 분노보다는 훨씬 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크게 화를 낸다는 뜻으로 대노(大怒)가 있다. 대노라는 말 앞에 극(極)을 붙이면 ‘극대노’가 된다. 극대노는 2000년 모 방송에서 방영됐던 시트콤 드라마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나왔다. 극 중 화를 잘 내는 인물인 노구(신구 분)는 사건의 크기에 따라 분노의 정도가 달랐는데, 극소노, 소노, 중노, 대노, 극대노 등 5단계로 분노를 드러냈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노구의 분노 5단계’라고 했다.

요즘 ‘VIP 격노설’이 많이 회자하고 있다. 대통령이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라는 것 아닌가. 채 해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격노하는 바람에 수사외압, 직권남용 등의 범법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샀다. 이에 국회는 진상규명을 위해 채 해병 특검법을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어제(28일)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결 절차를 밟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부결. 이로써 대통령의 격노로 촉발된 특검법은 좌절됐고, 국민의 분노는 한층 커지게 됐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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