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22] 네가 블레임 룩을 알리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4. 5. 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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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임 룩이라는 게 있다. 블레임(Blame)은 ‘탓하다’라는 의미다. 룩(Look)은 ‘옷차림’이라는 뜻이다. 탓할 때 입는 옷차림이란 소리는 아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입은 옷, 특히 명품 브랜드 제품이 유행하는 현상을 블레임 룩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만 쓰는 콩글리시다.

한국 최초 블레임 룩은 유명하다.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이 체포될 때 입은 미쏘니의 무지개색 티셔츠다. ‘신창원 티셔츠’라는 이름으로 가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신창원이 입은 것도 가품이었다.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가 입고 사진 찍힌 알렉산더 맥퀸 티셔츠도 유명하다. 진품이었다. 학력은 가품이었다.

블레임 룩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은 경찰 포토라인에 설 때 입을 블레임 룩을 꼼꼼하게 준비한다. 대개는 브랜드 로고 없는 검은 옷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경찰 출석 때 입은 코트가 모범 사례다. 로로피아나 제품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유행하진 못했다. 너무 비싼 탓이다. 명품도 가격의 급이 있다. 구찌가 땅콩이라면 로로피아나는 마카다미아다.

음주 운전 혐의 가수 김호중이 경찰 출석한 날 나는 기대했다. 어떤 블레임 룩을 선보일지 궁금했다. 맙소사. 로고가 선명한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 재킷을 과시하듯 입고 나왔다. 두 가지 의미 중 하나였다. 무죄를 확신한 것이다. 혹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는 오만함에 두뇌가 지배당한 것이다. 둘 다 아니라면? 소속사 홍보 담당자가 어지간히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물의를 일으킬 미래를 점집에서 미리 파악한 유명인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 명품 과시욕은 잠시 접어두시라. 로고 없는 옷 브랜드도 요즘 네티즌은 금방 캐낸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나 테무에서 삼천 원에 파는 삼백 원짜리 퀄리티의 검은 셔츠야말로 최고의 블레임 룩이다. 다만 알리와 테무는 국제 배송이라 시간이 걸린다. 포토라인 서기 열흘 전 주문하길 권한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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