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복지부동, 번지면 ‘행정악’ 재앙[오늘과 내일/임도빈]
용산 근무 꺼리고, 책임 피하려 소극 업무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정권심판론으로 총선을 막 치른 정치인들이, 남은 3년을 오직 다음 대선을 위해 투쟁으로만 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는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정도 심각하다.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에서도 여당 후보가 패한 것, 관료들이 용산 근무도 꺼린다는 소문이 그 증좌다. 최악의 파당 정치, 최소의 행정이 조합된 3년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예방책은 없는가. 우선 과거지향 정치에서 미래지향 정치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에 집착하는 소모전은 지양해야 한다. 22대 국회를 시작하면서, ‘신사협약’ 같은 것을 맺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부터 엄격하고, 투명하며, 높은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불신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약속, 야당도 흠집 내기보다는 생산적인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국민은 진보, 보수 양극단의 과거집착형 논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심리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이 중요하다.
이것이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한 생각이라 한다면, 그 영역을 한정하자. 예컨대 저출산 등 대통령 어젠다를 몇 개로 한정하고, 그 문제에 관한 한 야당은 대통령의 정책 추진을 통 크게 밀어주자고 협약하는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부터, 예산 등 필요한 수단을 주자. 현실을 모르는 꿈같은 얘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총선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23%의 유권자, 그리고 투표장에 가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차악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이 중도층을 잡으려면 정책 경쟁이 중요하다. 모두 ‘생각의 전환’이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다.
행정을 보자. 공무원시험 지원자도 줄고, 공무원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졌다. 멕시코와는 달리 우리는 신라 시대 독서삼품과 이후 유능한 관료를 뽑아온 역사적 DNA가 있다. 국내에선 비판받지만,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엘리트 관료들이 있는 나라다. 그런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것은 정권교체로 불이익이 따를까 두렵기 때문이다. 용산 근무를 꺼릴 뿐만 아니라, 전 부처 관료들이 가능한 최소한으로 일하고, 차후 문제가 될 경우에 대비해 일일이 근거를 남기는 데 급급하다면 행정이 곧 악(administrative evil)이 될 것이다. 역대 정권의 소용돌이에서 생존해온 관료 행태가 국가적 큰 손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법치주의 내에서 오직 공익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관료가 필요하다. 이런 소신파 관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 중립 보호법’을 제정하자. 그동안 관료들의 정치 중립 의무가 처벌을 위한 수단처럼 인식되었다. 이제 국민만 바라보고, 직무를 수행한 관료는 정권이 바뀌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권리’를 보장하자.
소신파 관료, 정권 바뀌어도 불이익 없어야
정치는 정치답게, 행정은 행정답게 만드는 것이 멕시코 모델을 피하는 길이다. 미국이란 거대시장을 옆에 놓고도, 수년간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치안 문제로 죽어가며,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나라와 닮아서는 안 된다. 멕시코 모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중요한 3년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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