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도구' 공정성 심의 없애야 할까? 언론학자 5인에 물었다
[이상한 나라의 선방심의위 (07)] 언론학자 5인이 본 '공정성 심의'
'입틀막' 논란부터 '심기경호위' 조롱까지… 22대 선방심의위 평가는
방송심의 제도적 개선책 모색 중인 학계, '폐지' 혹은 '유지' 격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역대 최다 중징계를 의결했습니다. 구성 때부터 편파·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된 선방심의위는 정부 비판적 방송에 집중 심의하고 선거와 무관한 안건까지 과잉심의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연재를 통해 선방심의위의 문제를 진단하고 제도적 해법을 모색합니다. <편집자주>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가 일으킨 '정치심의' 논란의 재발 방지를 위해 미디어오늘은 학자 5인에 공정성 심의의 한계와 방송심의제도의 개선책을 지난 24일 서면으로 물었다. 공정성 심의를 포함해 방송심의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공적 영역인 방송에선 공정성 심의가 아직 중요하다는 입장이 동시에 나왔다.
인터뷰는 가나다순으로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원용진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명예교수,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순으로 게재한다. 권혁남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추천으로 선방심의위원장을 5번(7회 지선, 20대 대선, 8회 지선, 2023 상·하반기 재보궐) 지냈고 심미선 교수는 한국언론학회 추천으로 선방심의위원을 2번(5회 지선, 8회 지선) 맡았다.
- 22대 총선 선방심의위가 역대 최다 법정제재(30건)를 기록했다. 전례 없는 제재 수와 강도에 방송사들은 반발하고 있는데, 종합적인 평가를 해주신다면.
권혁남=법정제재 30건을 모두 검토했다. 30건 중 야당에 불리하다고 심의한 방송은 2건에 불과하고 28건이 여당에 불리한 내용이더라. 여당에 불편한 소리를 못하게 막은 것이다. 출범 전부터 작정하고 구성된 '야당 입틀막 위원회'라 본다. 이전 선방위원장 경험에 비춰 30건을 다시 (심의해)보니 법정제재 1건, 행정지도 8건, 문제없음 21건이었다. 일반적인 공정과 상식선에서 너무 어긋났다.
심미선=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선방심의위다. 무엇보다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본다. 전문성이 있었으면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과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사안을 보려 했을 것이다. 이번 선방심의위는 사회적 관점보다는 개인적 소신으로 판단했다. 매우 위험한 전례다.
원용진=언론에 대한 심의가 언론 통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수위 조절을 하지 못했고 심의는 반드시 제재와 처벌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제작진 의견진술을 들으면서도 심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언론사의 설명에 공감하지 못했다. 학계에서 공정성 심의는 굉장히 오랫동안 논란이 된 부분인데 그런 논의가 빠졌다.
정준희=우리나라 방송심의제도의 한계와 약점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였다. 방송심의는 행정기구가 아닌 독립기구라 내용물에 대한 직간접적 규제력이 헌법과 법률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번엔 그 독립기구 구성이 사실상 특정 당파의 대리기구처럼 이뤄졌고 결정 역시 대리기구처럼 수행됐다. 이건 행정기구에 의한 직접 규제보다 더 악질적 형태다.
홍성철=사회가 심하게 정치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의견과 주장에 대한 참을성도 줄어들었다. 법정제재가 30건에 달한 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먼저 보도의 편향성이 존재했고 그 빈도가 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보도를 판단하는 심의위원들의 편향성 또한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 대부분 방송이 '공정성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자의적인 심의가 가능해 논란이 많던 규정이다. 공정성 조항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권혁남=실천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복잡한 이슈를 단 두 입장으로 제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정부 대북 정책을 다룰 때 정부·여당과 제1야당의 입장을 보도하면 나머지 야당과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는다. 양쪽 입장을 충실히 담아도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기계적 균형에 집착하면 한쪽 편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양으로 보도해 오히려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심미선=한국의 언론지형은 보수가 압도적이다. 절대적인 포털뉴스 이용률을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은 모두 종편 채널을 겸영한다. KBS는 사장이 바뀌면서 정부 비판 시각이 줄었고 SBS는 중립 혹은 보수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진보적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한다. 신문에선 경향신문과 한겨레, 방송에선 MBC만이 진보적 목소리를 낸다. JTBC까지 포함해도 소수다. 그나마 이런 소수 언론 때문에 다양한 시각이 공존했는데 이번 선방심의위는 모든 언론에 같은 목소리를 내라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셈이다. 언론에서 다양성은 공정성만큼이나 중요하고 어떤 학자는 공정성의 하위 개념으로 다양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공정성 기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정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공정성의 하위 기준들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원용진=공정성 심의는 하지 않는 추세다. 미국도 공정성 원칙 '페어니스 독트린'(fairness doctrine)과 정치인 후보에게 동등한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동등 시간 원칙'(equal time rule)이 있었는데 같이 없어졌다. 대선 후보 토론회를 한다고 해도 모든 후보를 다 참석시키지 않는다. 여론조사에 따라 유력 후보와 비유력 후보를 나누지 않나. 엄정한 의미의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고 한다면 방송도 모든 걸 여론조사를 통해 해야 한다. 박명진 교수가 방심위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성 지표를 만들기 위해 언론학자들을 모아 연구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정준희=공정성 심의는 정치적 정보와 견해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또 필요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객관적이란 것은 말 그대로 허위 사실에 연관된 객관성(정확히 말하면 정보의 사실성) 판단과 함께 어느 정도의 양적 균형이 필요하며 확인이 가능한지(정보와 의견의 균형성)에 대한 판단으로 이뤄진다. 사실성 판단은 의견이 아닌 '정보'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균형성 판단은 의견에 대해서도 가능하지만 어느 수준이 적절한 것인지는 질적 판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객관적이기 어렵다. 따라서 '자제돼야' 한다. 이번 선방심의위 판단은 자제되기는커녕 의도적으로 편향적이었다.
홍성철=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공정성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론과 방송 소비자들은 이미 정파적 입장에 따라 방송보도를 선택, 소비하고 있다. 방송사 역시 정파성을 하나의 상업적 무기로 활용하지 않나. 지상파 3개, 보도채널 2개, 종편 4개 등 무려 9개 채널이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데 모두 공정하게 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러한 보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오히려 방송 매체의 다양성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에서 정치적 공정성은 제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신료를 바탕으로 하는 KBS는 정치적 공정성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 원래 선방심의위는 방심위에 비해 '정치심의' 논란이 적었다. 추천단체가 비교적 다양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선방심의위가 논란이 컸던 이유는 뭘까. 재발 방지를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권혁남=추천단체 규정을 세밀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 얼마든지 편파적인 단체나 인물을 선정할 수 있었다. 학계 추천만 보더라도 이전엔 가장 권위 있는 학회에 추천권을 줬으나 이번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학회에 추천을 의뢰했다. 언론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친정부 편향 인사로 위원회가 구성됐다고 본다. '대한변호사협회'처럼 추천단체를 특정하고 정당 추천 인사는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심미선=규정에 심의위원 자격에 대한 기준이 없다. 심의규정을 정확히 모르는 위원이 심의에 참여하면서 방송심의를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또 이번 선방심의위 구성은 이해충돌 사안의 문제를 무시했다. 심의위원 중에 TV조선, MBC 출신이 포함된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 중에서 왜 하필 특정 방송사 출신 인사를 모셔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원용진=방심위가 선방심의위에 일을 넘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방심의위가 적극적이었다. 그 적극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파악이 필요하다. 많은 선방위원들 나이가 은퇴자에 가까워 마지막 직책 등이 제작진과 공감하기보다는 경영진과 교감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선방심의위 결정이 제작진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방송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준희=선방심의위가 이전까지 논란이 적었던 건 추천단체가 다양했을 뿐 아니라 심의위원들이 '자제'했기 때문이다. 사법기구가 아닌 독립적 심의기구가 신속히 개입하기 위해선 그 개입이 신중해야 한다는 걸 기존 선방심의위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 선방심의위는 그런 자제도, 신중함도 없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선 선방심의위 자체가 없어지는 게 낫다. 차제에 공정성 심의 자체를 재고하는 게 필요하다.
홍성철=추천단체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정치심의가 심해졌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에 법정제재 30건 중 20건이 MBC다. 특히 10건은 '뉴스하이킥'이라는 라디오 방송이다. 해당 방송 진행자는 곧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 생활을 할 예정이다. 비슷하게 다른 TV방송의 뉴스 진행자 역시 현직에서 바로 정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런 진행자들이 공정하려고 노력했더라도 진행하는 과정에서 '툭' 본심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한 편파적 방송에 동의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방송이 정파성을 가지는 부분에 대해선 찬성한다. 다만 본인 스스로 정파성이 있다는 걸 드러내야 한다.
- 논란이 거듭되다 보니 방송심의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하다. 또 차기 국회가 다룰만한 방송심의 관련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해주신다면.
권혁남=지금 제재조치를 받은 방송사가 그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은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의위원회 결정에 대해 최종 사법적 판단이 이뤄지기 전에 형사처벌을 가해 위헌적 요소가 있다. 이외에도 선방심의위 기준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이 많다. 이를 구체화시켜야 심의 논란이 줄어들 걸로 본다.
심미선=공정성 심의를 없애기보다는 어느 지점에서 논란이 생기는지, 논란을 줄이기 위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한다. 위원 구성 과정의 투명성, 전문성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특정한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해촉할 수 있는 근거도 필요하다. 방심위원 해촉 권한이 대통령에게만 있는 건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 언론사 종사자들이 언론기관에서 나오자마자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선 이해충돌이 문제가 되는데 정치권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용진=방송의 경우 (방송사) 자체 심의로 가져가고 통신 영역 심의만 남겨두는 건 어떨까. 인터넷에 명예훼손죄 같은 심각한 것들이 많다. 그런 건 민원이 제기될 때 빨리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 민원인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 것 같다. 이번 선방심의위는 민원인들이 의제 설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민원에 휘둘리는 경향을 보였다. 지금 방심위 사무국에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다. 그 전문성을 활용할 여지를 둬야 하지 않나 싶다.
정준희=가장 시급한 건 방송심의 내용과 기준이 재정비되는 것이다. 가장 문제시되는 공정성 심의는 없애거나 지극히 제한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로 넘기는 게 낫다. 그리고 청소년, 불법정보, 인권침해 등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부분에 치중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정치적 의견에 대한 건 규제를 줄이고 언론중재 정도의 성격으로 바꿔야 한다. 또 심의 결과에 대한 사후 책임성 강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심의위원 개인을 문제 삼기는 제도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이들을 추천한 단체엔 추천권을 일정 기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다.
홍성철=방송심의가 없어지면 법정제재는 사라지겠지만 공정한 보도는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을까. 또 법으로 해결하고 의존하려는 '소송지상주의'가 판을 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근 방심위나 선방심의위 개혁의 목소리가 특정 정당, 특정 방송사의 편에서 주로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제도적 개선은 필요하겠지만 단지 현시점의 유불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점에서 살펴야 한다. 다만 이번 기회에 방송의 정치적 의견에 대한 공정성 조항은 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해당 조항의 허용 범위를 넓게 해서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숨 쉴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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