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 정면에서 마주해…엔드 크레디트 꼭 봐달라”

최민지 기자 2024. 5. 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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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의 마지막인 <목화솜 피는 날>의 신경수 감독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육룡이 나르샤’ 등 인기 드라마 PD
선체 촬영 허가에 즉각 연출 결심
“시간·제작비 넉넉하지 않았지만
도움 주는 ‘마음들’ 덕분에 완성
크레디트 봐야 힘 얻고 극장 떠나”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참사 전과 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같은 곳이 아니다. 대중문화계 역시 참사의 아픔과 기억을 예술로 승화해왔다. 지난 10년간 참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만 20여편이다. 22일 개봉한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장편 극영화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신경수 감독은 말했다. “세월호를 정면에서 대면한 영화입니다. 개인사가 중심이 된 은유적인 영화들이 많았지만 <목화솜 피는 날>은 극중 인물 수현(우미화)이 선체를 마주하듯 세월호의 10년을 직접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참사 이후 10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딸 경은을 잃은 아버지 병호(박원상)는 사고 이후 기억을 점차 잃어간다. 아내 수현은 고통을 견디느라 집 안에 틀어박힌다. 아이들이 매일 타던 60번 버스 운전기사 진수(최덕문)는 봉사활동에 나선다. 세월이 흘러도 슬픔은 이들을 계속 따라다닌다.

슬픔이 안내한 곳은 뭍 위로 올라온 세월호. 기억을 잃은 병호는 정처 없이 헤매다 세월호에 다다른다. 영화는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을 극영화로는 처음 담아냈다. 신 감독은 선체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마치 고래의 깊은 배 안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선체 안이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과 고립감처럼 표현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영화 연출에 처음 도전한 신 감독이지만 드라마 팬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같은 굵직한 대하 드라마부터 <소방서 옆 경찰서>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아왔다. 2022년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를 준비하던 중 연출 제안을 받았다. “선체를 촬영할 수 있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유명 드라마 PD가 왜, 그것도 세월호 영화에 도전했냐는 물음에 신 감독은 오래된 기억을 꺼냈다. “초등학교 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든 5·18 비디오를 우연히 봤어요. 참혹한 시신으로 시작되는 영상을 보고 몇달 잠을 못 잤습니다. 광주 사태가 민주화운동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세월호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잘못 이야기되고 있거든요.”

촬영은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의식할 겨를조차 없이 바삐 진행됐다. 세월호 선체 출입이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의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스태프들의 눈빛이나 움직임을 보면 ‘우리는 이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 역시 대본 리딩 때 이미 완성된 상태였고요.”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엑스트라 출연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준 사람도 많았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영화가 완성됐다. “하루는 버스기사님이, 다른 날은 엑스트라 반장님이 ‘쏜다’고 해서 회식을 했어요. 드라마 <모범택시> 작가님이 돈을 부쳐주셔서 점심도 먹고요.”

영화 속 병호와 수현은 그저 눈물짓는 유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병호의 집착은 유가족 사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연출자로서 드러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신 감독은 피해자 또는 유가족을 바라보는 틀을 깨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나 유가족을 쉽게 악마화하고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합니다. 잣대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죠. 3000일 넘는 시간 그 안에서 갈등과 다툼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단순화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야 이 작품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기운을 되찾은 병호가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에게 세월호 선체 곳곳을 안내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학생들이 수많은 목숨이 스러진 공간에서 눈을 빛내는 가운데 희생자들의 이름이 화면 위로 올라간다. 내내 슬프던 영화가 ‘희망’으로 끝나는 것은 이 덕분이다. 신 감독은 엔드 크레디트를 끝까지 봐달라고 당부했다. “극장 안이 환해지더라도 마지막 크레디트까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셔야 힘을 얻어서 극장을 떠날 수 있습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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