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막판 ‘대통령 방탄’ 결집…총선 참패에도 안 변한 당정관계
전·현 원내 지도부 “단일대오” 호소…배신자 프레임도 작용
소신 투표 밝힌 김웅 “부끄럽지 않다면 나를 징계하라” 비판
국민의힘이 28일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재의의 건을 부결시킨 것은 4·10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당정관계를 바꾸기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되려면 재석 의원 294명의 3분의 2인 196표 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기명 투표 결과 찬성은 179표에 그쳐 17표가 부족했다. 반대는 111표, 무효는 4표였다.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김웅·안철수·유의동·최재형·김근태 의원 등 5명을 제외하면 여당 내 이탈표는 없을 것으로 추정됐다.
채 상병 특검법은 총선 참패 후 여당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바로미터로 인식됐다.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이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기에 더욱 그랬다. 성인 1000명에게 휴대전화 면접으로 조사(응답률 14.6%)해 지난 2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21대 국회 종료 전 처리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67%로 반대(19%)를 압도했다. 이태원참사특별법처럼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형태로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여권에서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통령 거부권에 이어 재표결을 부결시키는 선택을 했다. 전·현직 원내 지도부는 의원들을 한 명씩 접촉하면서 본회의 참석과 반대 표결을 독려했다. 결국 이날 본회의 표결엔 국민의힘 소속 113명이 모두 참석했다. 당론 표결이 부적절하다는 당내 일각의 의견도 있었지만 이날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반대 당론을 의결했다. 지도부는 막판까지 “특검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정쟁과 분열을 위해 만든 악법”(추경호 원내대표), “단일대오의 각오로 임해달라”(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고 이탈표 단속에 주력했다. 소신 투표가 적은 보수당의 특성과 당내 팽배한 배신자 프레임, 윤 대통령이 쥐고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권이 이탈표를 줄였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당에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목소리가 나왔다. 추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단일대오로 뭉쳐주신 덕분에 특검법이 부결될 수 있었다”며 “정말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거부권이 거부됐다면 윤 정권은 바로 레임덕 사태가 초래됐을 것이고 정국은 대혼란이 왔을 것”이라고 적었다.
김웅 의원은 이날 부결 후 SNS에 “지난 며칠간 보였던 우리 당의 그 정성과 그 간절함, 권력의 심기를 지키는 데가 아니라 어린 목숨 지키는 데 쓰시라”고 일갈했다. 그는 “그 당론이 진정 옳은 것이라면 진정 부끄럽지 않다면, 나를 징계하시라. 나는 찬성했다”고 적었다. 표결에 앞서 안철수 의원이 SNS에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 당의 미래는 참혹할 것”이라며 “특검을 받아 정면 돌파함으로써 선동정치의 땔감을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의원들의 선택을 바꾸지 못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이준석 개혁신당 당선인은 SNS에 “그렇게 갈취당하고 얻어맞으면서도 엄석대의 질서 속에서 살겠다고 선언한 학생들”이라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조소했다.
이날 익명에 숨은 이탈표는 오히려 범야권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예고대로 찬성표를 던졌다고 전제하면 범야권에서 반대나 무효로 5명이 빠져나간 셈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5명 외에 추가 ‘샤이 찬성’ 의원이 있었다면 범야권 이탈표는 그만큼 더 늘어난다. 이날 표결에 참석한 범야권 한 의원은 “몇 명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불어민주당의 이탈이 상당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다른 이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날 불참한 이수진 무소속 의원(서울 동작을)을 비롯한 야권의 이탈은 민주당의 총선 공천 후유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등 범야권이 22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재추진을 예고하면서 특검법 정국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2대 국회에서 범야권이 192석으로 늘어나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채 상병 수사가 윗선인 대통령실을 조여오며 여당이 수세로 몰리면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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