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악성민원 방지’ 명분, 국민 알권리 위협 말라

기자 2024. 5. 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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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악성민원 방지’를 명분으로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어 우려스럽다.

최근 정부는 악성민원 방지와 민원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하거나 과다한 정보공개청구는 심의회를 거쳐 종결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명분과 달리 이미 현행 법 내에서도 이 문제는 해소할 수 있다. 정보공개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종결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과다 청구를 할 경우에는 정보를 나눠서 공개하는 방식으로 탄력적인 대응도 가능하다. 민원성 내용은 정보공개가 아닌 민원으로 처리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있다.

그런데도 ‘부당하거나 과다한’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기준으로 각 공공기관에 설치된 정보공개심의회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해 청구를 쉽게 종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대책은 악성민원 방지라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정부의 자의적 청구권 통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부당하거나 과다한’ 청구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이를 심의회의 주관적 판단에 맡긴다면 공개 원칙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 심의회에 외부 전문가가 포함되더라도 위원회 구성을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한 중립성 확보가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결정권자는 기관장이기에 심의회 판단을 따를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정부에 불리하거나 민감한 청구가 반복될수록 ‘종결’ 처리는 악용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청구권 거부를 남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수감자의 강제노역 회피 목적 등 악의적인 청구에 대해 청구권 행사를 제한한 바 있는데, 공공기관이 이를 확대해석해 다량 청구자의 청구권을 임의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히 청구가 부당하거나 과다하다는 이유로 종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된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종결 처리가 남발될 경우 알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부당한 처분에 불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요하는 행정심판이나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시민들이 하기에는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커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행정심판은 ‘종결’ 처리에 대해 접수조차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정부 대책은 악성민원을 차단하겠다는 명목하에 국민 전체의 정보접근권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정보공개청구를 대하는 태도다. 법원의 공개 판결에도 불구하고 검찰 특수활동비는 계속 비공개되고 있고, 대통령실의 직원 명단조차 비공개되어 소송 중이다. 이는 권력기관의 비공개 관행과 이번 개정 추진이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악성민원 방지라는 명분 뒤에 정부에 불리하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한 국민 접근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악성민원에 대한 통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 해법은 소수 문제 사례의 선별적 대응에 있지, 청구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알권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다. 이를 짓밟는 어떤 시도도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악성민원을 차단한다는 미명하에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봉쇄하려 든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훼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법은 제도의 취지에 맞게 투명한 정부 구현과 국민의 알권리 실현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정부 주도의 법 개정은 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조민지 정보공개위원회 위원

조민지 정보공개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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