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 두 번 세 번 죽여”…군 사망 유가족, 채상병 특검법 부결에

고나린 기자 2024. 5. 2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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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이 부결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 아들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4월7일, 선임병들에게 오랜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제든 진실과 양심이 아니라 윗사람 눈치를 볼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채 상병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가 없고, 수사외압의 진실도 밝힐 수가 없습니다.”

10년 전 군 구타 사망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부결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안씨는 “특검법이 부결되는 분한 광경을 국회에서 방청하고 소회를 전한다”며 이날 군인권센터를 통해 ‘채상병 특검법 부결에 대한 군 사망사건 유가족 입장’을 전했다.

안씨는 입장문에서 “다른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과 함께 군사법제도를 뜯어고치자고 나섰던 일이 뜻대로 다 되진 않아서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다. 그 빈틈을 비집고 채 상병 사망사건도, 박정훈 대령의 수사외압 사건도 발생했다”고 짚었다. 이어 “오늘 특검법을 부결시킨 사람들은 2021년 군사법원법을 개정할 때 개혁을 가로막았던 이들이다. 또 특검 출범을 방해하며 우리 아들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고 했다.

채상병 특검법 부결 소식이 전해지 뒤 시민사회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3시께 채 상병 특검법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들 사이에선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윤석열을 탄핵하라”, “거부한 자가 범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단체들은 22대 국회에서 한층 강화된 특검법을 즉각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내어 “22대 국회는 대통령의 수사 무력화 시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더욱 강화된 형태의 특검법을 즉각 발의하고, 박정훈 대령과 해병대수사단 관계자, 생존장병 등이 국민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국정조사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도 성명에서 “이번 ‘채 상병 특검법’ 부결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공정한 기소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거역한 것”이라며 “진실을 영원히 가릴 수 없음을 대통령과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군 사망사건 유가족 안씨가 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한 입장 전문.

채상병 특검법 부결에 대한 군 사망사건 유가족 입장

안녕하세요, 윤승주 일병의 엄마 안미자입니다. 특검법이 부결되는 분한 광경을 국회에서 방청하고 소회를 전합니다.

제 아들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4월 7일, 선임병들의 오랜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군에서는 승주가 냉동만두를 먹다 질식해서 죽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7월 말이 되어서야 저는 제 아들이 맞아 죽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저희 가족을 속였습니다. 사망 당시 국방부 장관이 지금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인 김관진입니다. 제가 속고 살던 3개월 사이, 김관진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거짓말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0년을 싸웠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사건 은폐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승주 사건을 맡았던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이 한통속이 되어 면죄부를 나눠 가졌습니다.

그때 이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국회로 다니며 군사법 개혁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군사법원의 숫자를 줄이고, 2심 고등군사법원을 폐지시키고, 지휘관이 군사경찰과 군검찰, 군사법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축소시켰습니다. 우리 승주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겪은 이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채 상병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0년이 지나도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 일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일에 대통령까지 개입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 못된 고질병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는 박정훈 대령입니다. 저는 유가족과 같이 싸워주는 군사경찰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을 때 6군단 헌병 대장에게 사위가 ‘질식사 추정으로 나왔는데 몸에 있던 멍과 관련해 더 밝혀진 게 있냐’고 물었더니 ‘지금 나에게 수사 지휘하는 거냐’고 따졌습니다. 제게 군사경찰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박 대령을 더욱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진실을 찾아 10년을 헤맨 제게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던져 싸운 군인 박정훈은 제가 보낸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사람입니다.

여기 계신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군사법제도를 뜯어고치자고 나섰던 일이 뜻대로 다 되진 않아서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 빈틈을 비집고 채 상병 사망사건도, 박정훈 대령 수사외압 사건도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특검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든 진실과 양심이 아니라 윗사람 눈치를 볼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채 상병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가 없고, 수사외압의 진실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오늘 특검법을 부결시킨 사람들은 2021년 군사법원법을 개정할 때 개혁을 가로막았던 사람들입니다. 제가 그 당시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 들어가서 그 광경을 다 봤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또 특검 출범을 방해합니다. 우리 아들들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광경을 마주하고 있어야 합니까?

22대 국회에서 의원이 되실 분들에게 요청드립니다. 나라를 지키러 간 우리 아들들을 위해 22대 국회에선 반드시 특검을 통과시켜주십시오. 윗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무책임한 장군들이 아니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우리 아들들을 떠올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4. 5. 28.

윤승주 일병 모 안미자 드림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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