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특별법 통과에 "엄마가 주신 목돈 날렸는데…이제라도 다행"
전세사기특별법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
다만 尹대통령은 즉각 '거부권' 행사 방침
'동시 진행'·'연락 두절' 전세사기 피해자들
"방에 있는 자체가 고통…정신과 약 처방도"
"특별법 통과는 다행이지만, 와닿지는 않아"
"국가가 나서서 전세제도·법 체계 정비해야"
[서울=뉴시스]홍연우 우지은 기자 = "저희 엄마가 오래전에 저 결혼하게 되면 쓰라고 준 돈을 전세사기로 날렸죠. 제게 주려고 몇십 년을 모아온 돈인데…. 그때 엄마는 오히려 '혹시라도 나쁜 생각하지 말라'며 절 다독이셨는데, 오히려 그게 더 마음이 안 좋았죠. 차라리 돈을 받지 말걸 그랬단 생각도 들고…."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 지원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피해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시기와 내용에 관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뉴시스가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를 반기면서도 각각의 이유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 거주 중인 유모(37)씨는 소위 말하는 '동시 진행' 전세사기를 당했다. 이는 전세·매매 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는 수법의 전세 사기로, 임대인이 바뀐 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22년 2월말 해당 전셋집에 입주한 유씨는 1년 5개월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집주인이 바뀌었단 사실을 알았다. 그는 "솔직히 살면서 전세사기 같은 일이 본인에게 일어날 거 생각하진 않잖아요. 집에 들어올 때 등기상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들어왔는데도 이러니, 온갖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근처 부동산을 지날 때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가 심해져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처방약 없인 밤에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25살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과 어머니가 손에 꼭 쥐어주신 돈을 합쳐 만든 전세자금 1억4000만원이었다.
그때부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상황을 해결해 보려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씨는 "돈도 돈이지만, 절 속인 사람들에게 법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했다.
이어 "제가 당한 '동시 진행' 사기는 가장 흔한 수법 중 하나인데, 그럼 이런 경우 임차인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법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별법이 이제서야 통과된 건 다행이지만, 결코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며 "사기를 방지할 수 있게끔 법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려다 오피스텔 전세사기를 당한 원하연(32)씨는 이사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연락했다가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케이스다.
그는 1년짜리 전세계약 만료를 4개월 앞둔 지난 2022년 6월 집주인에게 전화했으나 '없는 번호'라는 연결음만 울렸다. 그 이후 집주인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태다.
원씨는 "그제야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거주지 주소 말소 기록이 굉장히 많더라. 임대인이 부득이하게 돈이 없어서 (전세금을) 못 돌려준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친 거 같았다. 지금은 소송과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기를 당했단 사실을 알고서도 해당 오피스텔을 떠날 수 없어 심적 고통이 컸다고 털어놨다. 또 "어딜 갈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계속 거기 살았는데, 방에 있을 때마다 계속 피해 사실이 떠올라 너무 우울했고 일상 생활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가족과 결혼을 약속한 예비 신랑의 도움으로 대출받았던 전세보증금 9000만원 중 절반가량은 상환했고, 나머지도 갚아나가고 있지만 원씨는 본인은 운이 좋은 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사기를 당했던 오피스텔에 회사 사람들,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저 말고도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며 "저야 주변의 도움을 받았고, 몇 년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해 털고 일어났지만 전 재산을 털어 집을 구한 사람들의 충격은 엄청나지 않겠나"라고 걱정을 표했다.
원씨는 이날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를 반기면서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고 나서 특별법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도움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선 결국엔 허점이 많은 전세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거 환경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이걸 가지고 범죄가 횡행하는 상황을 그대로 시장에 맡겨두는 건 굉장히 책임감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는 "앞서 피해자들은 상당한 비용과 시일을 투자해야만 피해액 일부라도 반환받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송 경매 등 비용이 계속 발생하지 않나. 이 사실이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며 "'선구제' 시기 비율 등의 문제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단 점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재석 170명 가운데 찬성 170명으로 의결했다. 법안은 국민의힘의 불참 속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이번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공공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나중에 경·공매 등을 거쳐 임대인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선구제 후회수'를 골자로 한다.
현재 시행 중인 특별법의 운용 과정에서 피해자 인정의 사각지대 해소와 피해자 추가 지원방안 마련 등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임차인에 외국인을 포함하는 것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피해자 요건 중 임차보증금 한도를 기준을 현행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다.
피해 조사 과정에서 피해 사실 등을 신속하기 파악하기 위해 요청 자료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지원 신청기간인 3년이 지난 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 등 지원은 지원 중인 자에 대해 계속 효력을 가지도록 한다.
피해주택 매입을 요청했으나 우선 공급받지 못한 피해자 등에 대해선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다만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제안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이 긴급 이송되면 29일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 계획이다. 국무회의에서 법안이 심의, 의결되면 윤석열 대통령도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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