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밀려… 10년 만의 법관 증원 ‘물거품’

이종민 2024. 5. 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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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히는 법관 증원이 결국 무산됐다.

여야도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양측의 정쟁 속에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셈이다.

한 중견 법관은 "과거에도 판사정원법 개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결국 국회도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며 "여야의 대치로 법원이 전례 없는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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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21대 국회 처리 무산
5년간 370명 순차적 증원 골자
여야, 증원 필요성 인정했지만
쟁점 법안 대치로 법사위 못 열어
끝내 마지막 본회의 상정 불발
“재판 지연… 결국 국민만 피해”

재판 지연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히는 법관 증원이 결국 무산됐다. 여야도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양측의 정쟁 속에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셈이다.

28일 국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각급 법원 판사정원법 일부개정안’은 이날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달 7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를 통과했지만 이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아 후속 절차가 이어지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현행 법률이 정한 판사 정원은 3214명인데 2014년 이후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는 최대치가 3214명일 뿐 실제 가동할 수 있는 법관 수는 이보다 적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육아휴직이나 연수 대상자 등을 제외한 현원은 3105명이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현재 법원이 신규로 임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정원에서 현원을 뺀 109명뿐이다.

이는 법원이 매년 임용하는 신규 법관의 수(140∼150명)보다 30∼40명 적다. 22대 국회에서 곧장 개정안을 마련할지도 미지수지만 속전속결로 추진하더라도 6월 말 선발 규모를 확정해야 하는 법원 일정을 맞추긴 어렵다. 폐기 수순을 밟게 된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이런 사정을 감안해 당장 올해 7월부터 50명을 증원하는 등 5년간 순차적으로 법관 370명을 늘리려 했다.

그간 법원은 사건 수가 늘고 난도가 올라간 것에 비해 법관 수가 충분하지 않다며 법률 개정을 요구해 왔다. 일례로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민사합의부의 평균 기록 면수는 2014년 176.6쪽에서 2019년 377쪽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그사이 사건처리 기간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전국 법원 민사합의사건 처리기간은 473.4일로 2017년(293.3일)에 비해 61.4% 늘었다. 형사 합의와 단독 사건도 40% 안팎의 증가폭을 나타냈다. 사건 자체의 특성뿐 아니라 코로나19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확산, 법관의 사기 저하 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표결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가결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중견 법관은 “과거에도 판사정원법 개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결국 국회도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며 “여야의 대치로 법원이 전례 없는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법원에서는 개정안이 법안심사1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의결된 만큼 본회의까지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국회가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 등 쟁점 법안을 두고 대치하면서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법사위 소속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려야 합의든 결렬이든 결론이 날 텐데 회의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검사 증원법을 (법관 증원법과 엮어) 함께 통과시키려는 여당 입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정치권의 다툼으로 법관 증원이 좌절된 데 대해 일선 법관들은 허탈감을 드러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여야 정쟁이 결국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었다”며 “(재판 지연 같은) 시급성 있는 사안을 구별해서 법안 통과를 논의했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관 이탈의 가속화도 우려했다. 그는 “업무 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상황에서 퇴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충원되지 않는 규모에 더해 이탈 인력까지 감안하면 파급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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