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아동 방지" vs "합법적 유기"… 보호출산제 제대로 안착할까

정재영 2024. 5. 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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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행 50여 일 앞두고 점검
위기 임산부 상담 전화번호 신설
분만기관 종사자 교육 등도 속도
시민단체, 아동 알권리 박탈 지적
“아이 버릴 권리 부여 잔인한 조항”
지난해 6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이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보호를 위해 추진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시행 50여일을 앞두고 안착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두 제도 시행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유령 아동’ 방지를 위해 ‘가명 출산’을 허용함으로써 입양을 권장하고 아동의 권리를 빼앗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령 아동’ 방지 ‘가명 출산’ 허용

정부는 28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출생통보 및 위기임신 지원과 보호출산제 시행 준비 상황 등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두 제도가 7월19일부터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아동의 출생 정보가 의료기관에서 시·읍·면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출생정보수집·전송시스템, 법원의 가족관계등록시스템 등 정보시스템 개선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역 상담기관 개소와 함께 위기임산부 상담 전용 전화번호(1308) 신설 등 위기임신 지원을 위한 상담체계를 구축하고, 위기임산부가 가명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시스템도 개선 중”이라며 “앞으로도 상담기관 및 분만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교육·홍보 등 제도의 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차질 없이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제이케이비즈센터에서 열린 출생통보 및 보호출산 제도 시행 추진단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법)에 따르면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해 공적 체계에서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부모 등 신고의무자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신고의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법원 허가를 받아 시·읍·면장이 직권으로 출생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심평원을 통해 지자체에 통보하게 된다.
‘보호출산제’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사유 등으로 출산·양육을 고민하는 위기 임산부들이 출생통보제로 인한 신분 노출이 우려돼 병원 이용을 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보호출산을 선택하면 13자리 임시번호인 전산관리번호와 가명을 부여하고, 태어난 아동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자체에서 입양 등의 보호조치를 실시하게 된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내부 공간의 모습. 연합뉴스
◆“14조, 아동 버릴 권리 주는 것”

시행 53일을 남겨둔 보호출산법은 유령 아동 방지를 위한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신원 노출을 꺼리는 임신부가 병원 아닌 곳에서 출산해 아동을 유기하는 추가 부작용을 염려해 보호출산제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이 밖에도 출산 후 1개월 안에 양육을 포기하고 비밀출산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출산 후 아동 보호 신청’(14조) 조항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해당 규정은 “보호출산 신청을 하지 않은 위기임부가 아동을 출산한 후 출생신고를 마치지 않고 생모에 대한 비식별화와 지자체 등을 통한 아동 보호조치를 원하면 출산 1개월 안에 지역상담기관에 신청해야 한다”고 돼 있다.

아동권리연대, 아동인권포럼 등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보호출산법이 아동 유기의 합법적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친생부모의 정보 등 아동의 알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특히 14조 규정에 대해 “양육이 힘든 임산부가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동을 합법적으로 유기하는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출산 전에 병원검진으로 상당수 장애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에게 ‘아이를 버릴 권리’를 쥐어주는 잔인한 조항이라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4조와 함께 장애 여성의 부모 등 보호자가 보호출산을 대신 신청할 수 있도록 한 ‘보호출산 신청’(9조) 조항 등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한국 정부 심의에서도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됐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애 아동에게 너무 치명적일 수 있어서 지적된 것”이라며 “아기가 물건도 아닌데 친자식을 ‘한 달 안에 국가에 무료반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호출산제가 ‘아동이 부모와 함께 살 권리’를 침해한다는 문제도 여전하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호출산제의 1차적 당사자는 고아이고, 2차적 당사자는 부모”라며 “통상 법은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만드는데, 이 법은 당사자가 관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싫어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건데, 법은 아이를 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재영·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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