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AI 번역으로 해외공략… 정확성 과제 남아
속도 뛰어나지만, 사람 개입 없어
일각 "인간 관리·감독 필수" 지적
최근 인공지능(AI) 번역을 통해 자사 홈페이지에서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AI 번역 서비스 도입으로 매체 홈페이지에 실린 모든 기사가 외국어로 실시간으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에게도 기사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어 국내 언론사에겐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가능성이 열렸다. 다만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AI 번역이 이뤄지기 때문에 번역 정확성, 책임 문제 등의 고민은 과제로 남아있다. 언론사 생존 전략 측면에서 AI를 활용한 여러 실험과 시도는 필수인 상황이지만, 신중한 AI 기술 이용에 대한 뉴스룸 내부 논의의 필요성이 현실로 다가온 시점이다.
매일경제신문은 3월19일 네이버가 개발한 AI 번역기인 파파고와 협력해 자사 홈페이지에서 ‘매경 다국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세 가지 언어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홈페이지 상단 국기 모양을 클릭하면 자동으로 기사가 해당 언어들로 번역된다. 일부 기사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 게재된 모든 기사가 실시간 번역돼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 매일경제의 기사가 세 가지 언어로도 검색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다국어 번역 서비스를 도입하고 나서, 매일경제 사이트로 들어오는 ‘해외 유입’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서비스 론칭 이후 4월 한 달간 영어·일본어·중국어 매일경제 페이지의 PV(페이지뷰)를 산출한 결과 지난달 대비 일평균 PV가 15.6% 증가했고, 5월(24일 기준)엔 4월 대비 PV가 44% 늘어났다. 이 중 80% 이상이 해외에서 포털(구글, 야후재팬 등) 검색을 통해 유입된 트래픽이라고 매일경제 측은 밝혔다. 임상균 매경닷컴 대표는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라며 “기존에도 매일경제는 펄스(pulse)라는 별도의 영문·중문 사이트를 만들어 현재 운영하고 있는데 제한적으로 기사를 선별하고 번역해 해외로 발신하는 방식이다. 이왕에 우리가 쓰는 모든 기사를 번역해 해외로 실시간을 내보자는 게 이번 다국어 서비스를 시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이어 “해외 독자들에게 저희 콘텐츠를 알리는 효과도 있을 테지만, 경제지인 저희 매체를 통해 국내 중소벤처 기업들이 해외에 소개되고,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는 사회공헌적 요소도 고려됐다”며 “해외 독자들은 어떤 기사에 반응하는지도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 향후 콘텐츠에 반영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인포맥스도 올해 들어 홈페이지와 금융정보 단말기에 영어·일본어·중국어 다국어 서비스를 도입했다. 구글 번역 오픈소스를 토대로 연합인포맥스 금융공학연구소 AI부가 자체 개발한 기사 문체 딥러닝 AI를 장착해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경제TV 케이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연합인포맥스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 생산에도 적극적인데 주요 뉴스를 선별하고, 방송용 문체 변경, 아나운서 음성 등을 AI화 한 영상을 하루 6~8번 선보이고 있다. 이번 다국어 번역 서비스도 AI 영상 콘텐츠 개발과 맞물려 론칭됐다.
김경훈 연합인포맥스 경영기획실장은 “연합인포맥스 단말기를 보고 거래하는 외국인들이 늘 목말라한 건 번역 기능이었다. 그동안 사람이 번역한 연합뉴스 기사 중 하루에 30~50건 정도를 보내주긴 했지만, 연합인포맥스의 모든 기사를 번역하려면 비용이 정말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며 “초기 여러 AI 번역기가 나왔을 때만해도 쓰기 곤란했는데 상당 기간 학습을 하며 성능이 좋아지고 있고, 우리도 자체적으로 AI를 개발해 ‘튜닝’을 해보니 도입할 때가 됐다고 봤다”고 말했다.
다만 기계 자동 번역이라는 한계가 있어 이들 언론사는 초기 과정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매일경제는 우선 기사 제목에는 다국어 번역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대신 기사 첫 번째 문장을 제목 자리에 배치하고 있다. 자동 번역된 기사 본문 중 번역 오류에 대한 문의가 오면 파파고에 요청해 해당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기도 하다. 매일경제가 AI 번역기로 파파고를 선택한 것도 해외 플랫폼보다 번역 품질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임상균 대표는 “번역의 정확성이 가장 큰 고민이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개발 과정에서 테스트를 많이 했는데 고유명사나 축약이 많이 들어간 기사 제목에서 번역 오류가 발견됐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국어 서비스엔 제목이 없이 나가는 것으로 대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경훈 실장도 “실시간으로 번역된 기사가 나가고 나서 주요 기사에 한해 ‘휴먼 터치’가 일부 있긴 하다. 일반 기사의 경우 전혀 문제없는 수준까지 왔지만, 경제 기사다 보니 숫자, 단위 등의 표현이 잘못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다만 기술이 생각보다 앞서가고 있어서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과했나 싶은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언론사에서도 기계 번역을 도입하는 추세다. 네이버페이는 증권 서비스에서 종목별 해외 기사로 한글 번역된 로이터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로이터는 기사 하단에 ‘면책조항’(DISCLAIMER) 게시해 “이 기사의 한국어 번역은 에프앤가이드가 사용하는 기계적 번역에 의한 것으로 톰슨로이터와 레피니티브는 번역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번역 AI 활용을 통한 신속성과 기사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이 과정에선 꼭 인간이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박아란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AI를 쓰는 건 이제 피할 수 없게 됐고,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AI에게 전적으로 맡겼을 때 여러 가지 오류나 차별·편견 혐오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날 수 있어 언론이 AI를 사용할 경우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며 “전문 에디터를 통해 번역된 기사에 대한 검수 과정을 반드시 거치는 등의 방법이 있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언론사들도 AI 사용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AI로 전체 기사를 생산해서는 안 되고, 보조 수단으로 쓰더라도 인간이 관리 감독을 해야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며 “AI를 쓰더라도 당연히 언론사 책임이기 때문에 책임자 이름이 바이라인으로 들어가는 등 투명성 요건 강화도 필요하다. 그래서 로이터의 면책조항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뉴스 제작 전반에 AI를 본격 도입하면서 내부 논의를 통해 AI 활용 범위, 인간의 관여·감독 원칙 등 ‘생성형 AI 활용 준칙’을 먼저 제정한 한국일보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김민성 한국일보 미디어전략부문장은 “누구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다 보면 현장에선 고민에 빠지게 되고,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내부에선 대화가 이뤄지고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기술을 활용해 보려는 도전이나 실험 정신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만약 문제가 발견됐을 때 그 논의들이 투명하게 공유되고, 내부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해진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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