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노인빈곤·26년 보험료율 동결에도…연금개혁 목전서 좌절
정부, '4대개혁' 강조하면서도 성과 못내…"골든타임 놓쳐"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국회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성공을 눈앞에 뒀던 국민연금 개혁이 결국 미뤄지게 됐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강조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 만큼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국회는 28일 본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를 보지 못해 연금개혁의 공을 22대 국회로 넘기게 됐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9%→13% 인상, 소득대체율 40%→44% 안팎 상향'으로 의견을 좁혀 개혁 달성 기대가 높았지만, '채상병특검법' 재표결 등 다른 이슈와 맞물려 논의가 표류했고 결국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했다.
개혁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좌초된 셈이긴 하지만, 정부는 시급성을 강조하면서도 연금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에 달할 정도로 노년층의 빈곤 문제가 심각해 그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Pension at a glance 2023) 자료를 보면 2020년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국민연금 기금의 지속가능성 역시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작년 3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행 제도대로 유지된다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 재정 수지 적자가 발생해 2055년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지금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6년 뒤에는 그해 지급할 연금 급여를 그해 거둔 보험료로 충당 못 해 기금을 깨서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주식 등 국내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개선 여지를 보이지 않는 노인 빈곤과 기금 지속가능성 위기 때문에 국민연금 개혁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가 컸다.
보험료율은 지난 1988년 9%로 오른 뒤 동결된 상태고, 소득대체율은 1988년 이후 한 번도 올라가지 않고 떨어지기만 했다.
'보험료율'은 월급(기준소득월액) 중 보험료로 지불하는 비율을 뜻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가입자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한다.
'소득대체율'은 평균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이다. 연금개혁에서 논의되는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하는 명목소득대체율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여야가 '보험료율 13% 인상, 소득대체율 40%→44% 안팎 상향'으로 합의를 이뤘다면, 보험료율은 26년 만에 인상되고 소득대체율은 사상 처음으로 상향 조정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정부는 그동안 누차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해왔지만, 한편으로는 정부 차원의 개혁안도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위원회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작년 10월 국민연금 개혁의 설계도 역할을 할 '2023 국민연금 재정계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제안 없이 보험료율과 지급개시연령, 기금 수익률, 소득대체율 등 4가지 요소를 조합한 24가지 시나리오만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같은 달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며 소득대체율의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모수(숫자) 개혁안이 빠져 '맹탕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국회 연금특위의 시민 숙의 후 '더 내고(보험료율 인상) 더 받는(소득대체율 상향)' 방향으로 개혁 논의가 진행 중일 때는 "미래세대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딴지를 걸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의미 있는 액션을 취하지 않고 연금개혁의 숫자가 좁혀질 때마다 구조개혁을 핑계로 미루기만 했다"며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개혁안도 못 내놓은 채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과제가 22대 국회로 넘어갔지만, 개혁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연금특위의 위원 중 상당수가 재선되지 못하면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여당이 모수개혁을 구조개혁과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의가 커지고 그만큼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졌다.
오 국장은 "국회의원은 바뀌어도 국민은 바뀌지 않는다"며 "특위의 공론화위 시민숙의 과정에서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인 만큼, 지난 논의를 무(無)로 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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