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ILO 전문가위, 정부 노조활동 개입 여지 노조법 개선 요청

박태우 기자 2024. 5. 28. 18: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결사의 자유 협약’ 이행보고서 검토 뒤 견해 제시
지난해 국회 ‘노조법 2조’ 개정엔 “환영” 평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3년 10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원국의 협약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권고적용 전문가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노동조합 활동에 부당한 개입 여지가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대한 ‘검토’를 ‘직접 요청’(direct request)했다. 또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조 개정안에 대해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아이엘오의 ‘직접 요청’은 노조법을 한국이 2021년 비준한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하게 개정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28일 아이엘오 누리집과 고용노동부 설명을 종합하면, 아이엘오 ‘협약·권고적용 전문가위원회’(전문위)는 지난해 11월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 이행에 관한 정부 보고서와 노·사 단체 의견을 검토한 뒤 총 23건의 사항을 지난 3월 한국 정부에 ‘직접 요청’했다. 정부는 2021년 해당 협약 비준 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이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전문위는 보고서 검토 뒤 ‘의견’(observation) 혹은 ‘직접 요청’ 등의 ‘견해’(comment)를 회원국에 제시한다. ‘직접 요청’은 통상 ‘기술적인 질문이나 추가 정보 요청에 관한 사항’을 뜻하는 것으로, 회원국에 구체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보다 수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나, 이번에 정부가 받은 직접 요청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구체적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위는 우선 지난해 정부가 ‘노동개혁’ 등을 명분으로 시행한 ‘노조 회계장부 비치 의무 점검’에 관한 조처를 촉구했다. 전문위는 “노조 재정 관리에 대한 감독은 연간 재무보고서 제출 의무로 제한할 때 협약에 부합한다”며 “법률이 행정관청에 언제든지 조직의 장부·문서를 검토하고,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는 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조법 27조를 검토(review)하고 위 원칙에 따라 노조의 기능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을 요청”했다. 노동부는 앞서 노조 회계장부 비치 의무 점검의 근거로 노조법 27조의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내세웠다. 그러나 전문위는 이 조항이 결사의 자유 협약과 부합하지 않아 고칠 필요성이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전문위는 지난해 11월 노조법 2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환영한다”거나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다”고 밝혔다.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한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전문위 검토는 지난해 11월 말 이뤄져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전문위는 “파업의 정당한 목적을 좁게 해석하면 한국에서는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과 관련된 파업, 동조 파업 등이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합법적인 파업 목적의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사용자’ 범위를 넓히는 개정 역시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다”며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현재 기업 중심 단체교섭 체계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사용자(단체)와 이들을 대표하는 조직 간의 자발적 교섭을 위한 기구의 개발·활용을 장려·촉진하기 위해 국가 상황에 적합한 조처를 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노조법 2조 개정안에는 노동쟁의 규정을 개정해 합법적인 파업의 범위를 넓히고,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 사업주도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의무를 지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노조법 2조 개정은 노동계의 22대 국회에 대한 핵심 요구 사항이다.

이 밖에도 전문위는 노조 활동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와 단체협약 시정명령 제도에 대해서도 검토를 직접 요청했다. 이를 근거로 140여개국 제조업 노조가 가맹된 ‘인더스트리올 글로벌 유니온’은 지난 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한국이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협약 이행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인더스트리올은 해당 결의안에서 “한국의 노조법 2·3조 개정 거부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비준한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가 사이에 맺은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수준을 넘어 무역 제재와 같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도 초래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임을 주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결사의 자유 협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조법 2조는 물론이고, 정부가 노조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노조 할 권리를 제약하는 노조법 전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함이 확인된 것”이라며 “정부가 아이엘오의 직접 요청 의미를 폄훼할 것이 아니라 비준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직접 요청’은 전문위가 보고서 검토 과정에서 회원국에 요구하는 통상적인 정보 제공 절차”라며 “전문위가 요청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9월 제출할 보고서에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