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박정희 선전 연극'을 극작가 차범석 탄생 100주년 작품으로 고른 까닭은

김소연 2024. 5. 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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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정희 정권의 지시로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을 극화한 새마을희곡(연극) '활화산'을 쓰기도 했다."

연극 '활화산'은 사실주의 희곡으로 한국 현대 연극의 밑거름이 된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을 설명할 때 한두 줄의 문장으로 간략하게 언급된다.

연극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선전·선동의 순간을 충실히 그림으로써 공포의 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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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탄생 100주년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18명 출연 국립극단 시즌 최대 규모작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그는 박정희 정권의 지시로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을 극화한 새마을희곡(연극) '활화산'을 쓰기도 했다."

연극 '활화산'은 사실주의 희곡으로 한국 현대 연극의 밑거름이 된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을 설명할 때 한두 줄의 문장으로 간략하게 언급된다. '활화산'은 차범석의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로 창작됐고, 이해랑 연출의 국립극단 공연으로 1974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돼 혹평을 받았다.

그런 '활화산'이 50년 만에 부활했다. 그것도 차범석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이다. 윤한솔 연출가는 국립극단의 연출 의뢰를 받고 차범석이 남긴 64편 중 직접 이 작품을 골랐다. 그는 "100주년 기념 타이틀에 맞지 않는 작품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오늘날 관객에게 무엇이 선전·선동이 되고, 선전이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말했다.

윤한솔 연출가. 국립극단 제공

각색·윤색 없이 원작 그대로 무대에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배경은 1960년대 경북 벽촌의 한 마을. 주인공 정숙(강민지)은 양반 가문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이씨 문중의 며느리다. 시부모는 구습에 갇혀 있고 남편 상석(구도균)은 온갖 선거에서 떨어져 집안엔 빚만 쌓여 간다. 정숙은 돼지를 키우며 집안과 마을에 새바람을 일으킨다.

5막 구성의 원작은 인터미션이 있는 2막으로 재구성됐다. 전반부에서 한복 차림으로 가족을 돌보던 정숙은 후반부에선 초록색 작업복을 입고 등장한다. 1막은 근현대 사실주의 연극 그 자체다. 무대 중심엔 가문의 몰락을 상징하듯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이 놓여 있다. 다투는 장면에선 배우들이 직접 치고받을 정도로 묘사가 사실적이다.

희곡의 선전·선동적 성격은 2막에 집약돼 있다. 정숙은 상석의 조카 환의 음주와 유흥을 꾸짖고, 외부 지원으로 다리를 놓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에겐 공동체와 자립의 가치를 역설한다. 50년 전에 쓴 대본엔 빈틈이 많다. 근면·자조를 통한 빈곤 퇴치라는 새로운 사상에 빠져드는 인물들의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다. 2막의 과잉된 연기와 상징적 무대 연출은 그 빈틈을 채운다. 정숙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마을 사람들이 아닌 객석을 향해 "하면 됩니더.(…) 우리는 죽은 화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화산입니더.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더"라고 외치는 등 새로운 연출적 시도도 추가됐다.

국립극단 '활화산' 1974년 공연. 국립극단 제공

집단 광기 속에 배제되는 개인들

연극 '활화산'. 국립극단 제공

연극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선전·선동의 순간을 충실히 그림으로써 공포의 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윤 연출가는 "집단 광기로 이어지는 성공적 프로파간다(선전)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설득 과정 이후 대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궁금증 등 여러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활화산'은 18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국립극단 시즌 최대 규모 작품이다. 상석의 집 머슴 종갑, 주막집 주인 인천댁, 전쟁으로 다리를 다친 상석의 형 상만 등은 정숙의 '개조' 서사가 강해지는 2막 후반부엔 등장하지 않는다. 가난 탈출과 조국 근대화 목표를 향한 집단 광기 속에 누군가는 소외되고 배제돼야 한다는 의미일까. 1970년대 교화 연극 '활화산'이 던지는 질문이다. 다음 달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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