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돌아올 때까지 버틸 것…손잡고 중환자 같이 보고파"
"전공의 공백, 교수·전임의 사직으로 이어져…한 번 빠진 세대는 복구 어렵다"
서울의대 교수들, 제자이자 후배인 전공의·의대생 향한 미안함 드러내며 울먹여
"개인의 영달만 추구한 것 아닌가 반성" "눈앞의 환자·상아탑 갇혀 있었던 제 자신 후회"
"(병원 밖에) 나가 있는 전공의들, 지금 버티고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한다면 1번은 '미안하다'인 것 같고…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다시 제대로 환자를 볼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하은진 교수는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지 최대 석 달째가 된 전공의·의대생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는 취재진의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28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통령실 레드팀께: 의료개혁, 이대로 좋습니까?'란 주제로 연 언론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나온 발언이다.
하 교수는 "저는 사실 선배님들께는 별로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다"며, 제자이자 후배인 젊은 의사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중순 의대 교수들을 '전공의 착취 사슬의 중간관리자'로 지칭한 언론 보도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용한 것을 두고 "굉장히 충격이었다"며 "그들이 나갈 때 처음에는 원망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후 전공의들이 사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 정작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이르렀나'를 고민하게 됐다는 게 하 교수의 설명이다.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선생이었나', '이 녀석들(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졌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실제 병원에 남아 있는 나머지 동료들과 선배들도 다들 그런(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며 "그러니까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직역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돌아와 달라'고 전공의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시에 "본인들의 신념을 제대로 이룩할 수 있는 환경을 얻으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이후에도 전공의 대부분이 여전히 복귀 조짐이 없자, 정부가 당분간 '전공의 부재'를 상수로 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작금의 여파가 올해만이 아닌 '향후 10년간' 지속될 거라고 내다봤다.
고연차 레지던트의 이탈로 인한 내년도 전문의 수급난은 불 보듯 뻔하고, 집단유급이 임박한 의대생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현실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하 교수는 "대학병원에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는 엄청난 수의 외래·수술 환자, 병동 환자들을 커버하고 있다"며 "지난해 기준 서울대병원은 일평균 외래환자 9700명을 봤고, 연간 입원환자는 56만 명, (집도) 수술은 4만 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은 당국의 '저수가 정책'과 더불어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내원이 브레이크 없이 지속되면서, 쏟아지는 환자들을 돌보는 데 대학병원의 역량이 과하게 소진되고 있다는 게 하 교수의 진단이다.
하 교수는 "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과정은 매우 분업화된 형태로 이뤄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진행이 어려웠다"며 "교수는 교수의 롤(role)을 하고, 전공의도 연차별로 정해진 역할을 최대 효율로 최선을 다해야만 '간신히' 유지되는 진료 역량이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대학병원 진료의 주춧돌'이었던 인턴·레지던트가 빠져나가자, 안전한 수술·회진 등이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수술 보조 등도 일부는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맡을 수 있을지 모르나, '의사'인 전공의들이 트레이닝을 받으며 수행해야만 하는 영역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이른바 '빅5' 등 대형병원들의 진료 축소는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로 전공의는 단순한 진료 인력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들은 결국 저희의 미래 의료를 담당하고 현 의료기술과 지식을 이어나갈 매우 중요한 후속세대"라고 전제했다. 이들에 대한 교육은 의대 교수 외 '펠로우'라 불리는 전임의들을 통해서도 이뤄지는데, 전공의 공백에 따른 격무를 짊어진 전문의들이 번아웃에 못 이겨 퇴사할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 교수는 "그렇게 (전공의를) 가르칠 교수 등이 없어지고 나면 나중에 전공의들이 돌아온다 해도 해당 세부분야의 제대로 된 전문지식은 습득할 수 없다. 의료는 과학적 영역도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이 상당한 학문"이라며 "환자를 보는 기술, 노하우를 직접 보고 배우는 도제식 시스템이 여전히 남아있는 영역이기에 한 번 빠진 세대는 다시 복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나마도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던 전공의 수련체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고, 이를 섣불리 다른 대안으로 메우려 하다가는 오히려 붕괴가 가속화될 거란 암울한 전망이다.
다만 하 교수는 "나가 있는 전공의들이 '다시, 멋진 신경외과 교수가 되겠다'고 했던 얘기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서, 그 녀석들과 손 붙잡고 신경외과 중환자를 보고 싶다. 그래서 최대한 버텨보려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또 다른 서울의대 교수들의 자성도 이어졌다. 하 교수와 마찬가지로 '필수의료과(科)'로 분류되는 신경외과 전문의인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2기 서울의대 비대위원장)는 "저희 전공의들한테 정말 할 말이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개인적으로 '명의' 소리를 듣고…또 수술장에서 후배 교수가 급하게 저를 찾을 때 들어가 TV 드라마에서처럼 혈관을 딱 잡아 환자의 피가 멎고 혈압이 쫙 오르면서 마취과 선생님 등이 전부 저를 경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 그에 상당히 우쭐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의 어떤 영달을 추구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현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의료계에 대한 이해가 정말 없더라. 지금까지 저를 포함한 의료계는 뭘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정책 하시는 분들께서 이렇게 (의료계 현실을) 이해 못하는 상황을 방관한 저의 책임 방기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사태의 피해자가 되신 국민 여러분께도 정말로 죄송하다"며 "제 앞의 환자, 제 분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상아탑에 갇혀 있었던 제 자신을 후회한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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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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