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사회가 노화 부른다... 느리게 늙으려면 긍정적 생각이 중요
“사람마다 노화 속도 달라, 저속노화 실천해야”
렌틸콩과 귀리, 현미, 백미의 비율을 4:2:2:2로 섞어 밥을 찐다. 여기에 녹색 채소와 과일을 두르고, 흰살 생선을 얹는다. 어떤 사람은 귀리와 현미 대신 두부나 병아리콩을 삶아 넣기도 하고, 토마토나 파프리카, 구운 닭다리살을 넣기도 한다.
최근 X(옛 트위터)에서는 밀가루나 설탕, 지방을 크게 줄인 건강한 식단이 유행이다. 사람마다 그날 실천한 건강 식단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서, 확인이라도 받듯 한 사람을 태그한다. 바로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다. X에서 ‘저속노화쌤’으로 불리는 정희원 교수는 저속노화 식단 밈(인터넷이나 SNS에서 퍼지는 유행)을 퍼뜨렸다. 저속노화는 생체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젊게 만든다는 뜻이다.
지난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정 교수는 “저속노화 식단은 단백질과 섬유질, 비타민 등 영양소가 권장량만큼 들어 있고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는 단순당(설탕, 콜라, 사탕, 과일주스 등 당이 들어간 가공식품)과 정제 곡물은 빠져 있다”며 “이렇게 꾸준히 먹으면 남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뇌가 늙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단뿐 아니라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생각 같은 지금의 습관과 행동이 20년 뒤 건강으로 나타난다”며 “젊고 건강할 때부터 저속노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정희원 교수와의 일문일답.
–‘노년내과’라는 과 이름이 생소하다. 어떤 환자들이 오는가.
“생물학적, 의학적, 사회적으로 봤을 때 현재 한국의 노인은 여성 73세, 남성 70세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숫자 나이보다 중요한 것이 노쇠한 정도다. 노쇠는 내 몸이 고장난 정도, 나의 생물학적인 나이를 말한다. 노년내과는 치매, 근감소증부터 낙상, 어지럼증, 화병 등 노인질환을 두루 앓고 있는 노쇠한 사람들이 찾는다.”
–노쇠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노인질환은 여러 증상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젊은 환자처럼 진단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는 폐렴이 발생해도 젊은 사람처럼 고열이 나는 게 아니라 근육이 약해져 침대에서 떨어질 수 있다. 어떤 환자는 아기처럼 짜증을 내거나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환자는 체중감량으로 병원을 왔는데 원인이 우울증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단백질을 먹어라, 근력운동을 하라는 조언은 소용이 없다. 즉, 노인질환은 증상 자체로만 병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임상 노쇠척도에서 점수가 4~5인 사람들은 노년내과에서 도움 받을 것이 꽤 있다.”
–사람마다 노화 속도가 다르다는 얘기인가.
“사람마다 유전적,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노화 속도가 다르다. 식단이나 운동, 수면시간 등 생활 습관에 따라 노화 시계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60대여도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숟가락을 들기조차 어렵고, 어떤 사람은 80대인데도 매일 한강에서 자전거로 수십 ㎞ 달릴 정도로 정정하다. 젊었을 때부터 노화 속도를 어떻게 쌓아 왔는지에 대한 결과가 장년기에 질병 목록, 노년기에 노쇠로 나타난다.”
–저속노화 방법은 무엇인가.
“젊고 건강할수록 저속노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저속노화 식단처럼 귀리나 현미처럼 갈지 않은 통곡물, 렌틸, 병아리콩처럼 느리게 흡수되는 복합 탄수화물을 채소와 함께 먹으면 포만감이 오래 가고 혈당 상승 폭도 낮아진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천천히 노화한다.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들은 이보다 저속노화 식단을 더 챙기는 경향이 있다.”
–저속노화 습관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저속노화 습관을 들이면 노쇠가 일어나는 시점을 늦출 수 있다. 병이 생기는 시점을 뒤로 미룰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연구팀이 66세 한국인 96만 8885명의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노쇠 정도에 따른 10년 내 사망률과 노화에 따른 질환 발생률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젊을 때 가속노화 습관이 든 사람은 10년 뒤인 76세 때 사망 위험이 4.43배나 더 컸다. 장기 요양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확률은 11배나 됐다. 100세 수명 시대에 남들만큼 오래 살더라도 병으로 인해 요양을 오래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렸다.”
–나이가 들면 저속노화는 물 건너 가는가.
“아니다. 우리 과 장일영 교수와 함께 연구한 결과, 이미 노쇠가 발생한 사람이라도 6개월 이상 다면적으로 노력하면 상당 부분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에서는 잘 먹고 잘 자고 명상과 운동을 꾸준히 2개월 동안 하면 혈액검사 결과 생체나이가 3년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저속노화의 반대는 가속노화인가.
“가속노화는 생물학적 나이가 숫자 나이보다 빠르게 나이 들고 있는, 즉 노화 속도가 1배속 이상이라는 의미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가득한 식단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잠을 충분히 자지 않고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 가속노화할 수 있다. 가속노화는 통장에 차곡차곡 노화를 저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통장은 심지어 복리 효과가 있어 젊어서 쌓을수록 문제가 커진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은 가속노화에 취약하겠다.
“맞는다. 현대인을 가속노화시키는 주범은 바로 사회다. 현대인은 분초 단위로 잠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일이나 공부를 한다. 과거 국가가 발전하고 건강수명이 짧았던 시대에는 바쁘게 살아가는 방향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수명 시대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데 젊을 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가속노화하면 나이 들어서 고생할 수 있다.”
–요즘 뭐든 열심히 하는 게 미덕으로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은연중에 개인 시간을 줄이고 일에 몰두할수록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옳지 못하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안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마음을 비우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사회가 변해야 한다. 모두가 잘 자고 잘 쉬고 스트레스가 적어야 서로에게 공감하고 자애롭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지금 현대사회는 모두가 화가 나 있어 본인에게도, 남들에게도 자애롭지 못하다.”
–인구 감소도 가속노화와 관련 있다는데.
“심각한 저출생 문제 또한 가속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 낸 책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에서도 밝혔듯, 스트레스가 가득한 사회가 개인에게 가속노화를 만들 뿐 아니라 여유가 없으니 출산, 육아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개개인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찜통에 갇힌 것처럼 스트레스가 가득한 이 사회가 저속노화 사회로 바뀌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지금보다도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저속노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을 조언해 달라.
“생활 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면 생각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 가속노화 식사를 매일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높아지고 수면의 질도 떨어져 가속노화 습관이 악화한다. 이와 반대로 지금 당장은 맛이 없고 힘들더라도 저속노화를 시작해 보자. 식단에서 정제 곡물을 줄이고 녹색 채소와 통곡물을 늘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밤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일찍 잠들어 수면 시간을 늘려 보자. 생활 습관을 개선하면 인지기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진다. 충동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행동, 과음이나 흡연, 폭식을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저속노화하려면 이러한 자기 돌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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