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원으로 ‘케로신 로켓’ 만든 북한…엔진 결함으로 폭발한 듯
등유인 케로신은 추력 높아 연소 불안정 가능
북한이 27일 밤 늦게 군사정찰위성 로켓을 발사했지만, 2분 만에 발사체가 폭발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특히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로켓은 기존에 북한이 사용하던 추진제(연료)가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 러시아에서 흔히 쓰는 추진제를 사용한 것으로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8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27일 오후 10시 44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발사장 일대에서 군사정찰위성 발사체를 발사했다. 다만 발사 2분 뒤인 오후 10시 46분쯤 북한 측 해상에서 폭발해 발사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 발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비상설 위성 발사준비위원회 현장 지휘부 전문가심의에서 새로 개발한 액체산소·석유 엔진의 동작 믿음성에 사고 원인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북한의 발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액체산소·석유 엔진’이다. 북한이 밝힌 석유는 액체연료 추진발사체에 많이 사용되는 케로신(등유)을 말한다. 미국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이나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 엔진 모두 연료로 케로신을 사용한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넘기고 케로신 엔진 기술 개발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북한은 원래 액체연료로 하이드라진, 이를 연소할 산화제로 사산화질소를 배합하는 백두산 엔진을 사용했다. 북한이 지난해 5월과 8월, 11월에 발사한 위성 발사체를 모두 백두산 엔진을 썼다. 하이드라진은 질소와 수소 화합물로, 상온에서 액체상태로 있어 저장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소량만 노출돼도 인체에 해로운 치명적인 유해물질이다.
케로신과 하이드라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소효율을 뜻하는 비추력에서 나타난다. 비추력은 추진제 1㎏이 소비될 때의 연소효율을 의미한다. 하이드라진 엔진의 비추력은 270초, 케로신을 사용하는 누리호 엔진의 비추력은 310초다. 또 80t급인 백두산 엔진은 엔진 하나에 노즐(배기구)이 두 개 붙어있는 ‘듀얼 체임버 방식’을 사용했는데, 로켓 1단에 엔진을 두 개만 넣을 수 있어 총 추력이 160t에 불과했다. 단일 체임버 방식을 쓰는 누리호는 1단에 엔진 4개를 넣어 총 추력이 300t에 달한다.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하이드라진과 케로신의 비추력 차이를 숫자로 보면 3~4% 정도지만, 연소시간에서는 30초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엔진 성능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책임연구원은 “한국도 비추력을 올리기 위해 엔진을 개량할 때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추진제를 케로신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엔진 추력 성능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연료를 케로신으로 바꾸면서 미사일이 아닌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는 대외적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이드라진은 상온에서 보관이 가능하다. 그만큼 로켓을 쉽게 쏠 수 있다. 무기체계의 핵심인 ‘신속 발사’가 가능한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발사체를 개발하면서 하이드라진을 사용해 발사체가 아닌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이번 발사는 북한이 독자적인 로켓 개발에서 벗어나 국제적으로 일반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라며 “(하이드라진을 이용한) 기존 발사체는 상온에서 연료를 주입해 끌고 다닐 수 있어 미사일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액체산소를 극저온으로 유지하면서 발사체에 넣어야 하는 만큼 발사대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드라진 발사체는 연료를 미리 채운 발사체를 기립해 바로 쏘면 되지만, 케로신 발사체는 기립한 상테에서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엄빌리컬(umbilical·탯줄) 같은 충전 설비가 꼭 필요하다. 실제로 동창리 발사장에선 지난해부터 신축 공사를 진행하는 듯한 모습이 위성으로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북한 발사체 폭발은 엔진의 기초적인 결함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케로신 엔진이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하이드라진에서 케로신으로 연료가 바뀌며 추력이 높아져 연소 불안정 현상을 잡는 데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연소 불안정은 열과 압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일어나는데, 추력이 높아질수록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2010년 나로호 2차 발사 당시 2분 17초 정도 만에 추진시스템 문제로 기체가 폭발했다.
한영민 책임연구원은 “북한에서 엔진 신뢰도 문제를 거론했는데, 그중에서도 연소 불안정 현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며 “엔진 연소 시 고온으로 터보 펌프가 이상하게 작동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의 케로신 엔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권용수 교수는 “현재 러시아는 북한에 위성 발사를 위해 체계적인 자문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도 러시아 자문에 맞춰 로켓 개발 로드맵을 정했을 텐데, 생각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발사가 2분 만에 실패로 돌아간 만큼 텔레메트리 데이터도 많이 얻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텔레메트리는 먼 거리의 측정 자료를 전송하는 통신 방법으로, 로켓 발사 시 필요한 정보들을 얻는 수단이다. 한 책임연구원은 “적어도 단 분리 상황에서 실패했으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특히 엔진 문제는 텔레메트리로 분석하기 쉽지 않다”며 “발사 직후 폭발해 원인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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