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뜯겼는데 "집 안 빼면 소송"…석방된 피의자 한달째 연락두절

정세진 기자, 황예림 기자 2024. 5. 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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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기 벌인 염모씨, 피해자만 120여명…피해회복 약속하며 보석 석방 후 연락 없어
염모씨(44·남)이 소유했던 서울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긴급공지합니다. 6월에 신탁사 동의 없이 계약한 불법점유세대에 대해 명도소송을 제기할거라고…"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N오피스텔에 사는 전세사기 피해자 90여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N오피스텔 건물 3채를 소유한 염모씨(44)는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긴 후 새마을금고 9곳에서 147억원을 대출받았다. 염씨는 새마을금고에 돈을 갚지 않았고 세입자에겐 제대로된 설명없이 임대차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염씨 변호인은 지난달 30일 서울 남부지방법원 형사14단독(홍윤하 판사) 재판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세입자 피해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며 보석을 신청했다. 지난 1일 염씨는 석방됐다. 한달 후 피해자들에겐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소식 대신 명도 소송 소식이 전해졌다.
강서구·관악구·경기 화성 등에서 전세사기…"내가 몇번째 피해자인지, 어떻게 보상받을지 알 길 없어"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N오피스텔. 염씨가 이곳을 사들여 담보신탁 계약을 맺고 신탁사 동의 없이 세입자를 받았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세입자들은 여전히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염씨가 석방된 지 1달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석방 소식은 소문으로만 돌았다. 염씨와 전세계약을 맺은 이모씨는 "'염씨가 석방됐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사람한테 건너 듣는 식이었다"고 했다. 이어 "염씨 석방 이후 피해자 중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염씨는 자신이 대표인 법인을 통해 N오피스텔 3개 동을 샀다. 2021년 7월엔 신탁회사에 오피스텔 소유권을 넘기고 새마을금고로부터 대출을 받는 담보신탁 계약을 맺었다.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새마을금고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는 담보신탁상품을 이용한 것이다.

신탁을 맺은 건물에 세입자를 받으려면 신탁사 동의가 필요하다. 염씨는 동의서를 위조하거나 발급해 준다고 말하고 시간을 끌며 주지 않았다. 신탁 동의서 없이 임대차 계약을 맺은 세입자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계약서상 우선수익자는 신탁사다. 강서구 N오피스텔에서만 90여명이 동의서가 없거나 위조된 동의서를 받고 계약했다.

석방 소식은 서울 관악구 피해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염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도 H오피스텔을 구매한 후 신탁사에 소유권을 넘기고 새마을금고로부터 수십억원을 대출받았다. 경찰이 파악한 H오피스텔 피해자는 30여명에 달한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N오피스텔. 염씨가 이곳을 사들여 신탁 계약을 맺고 신탁사 동의 없이 세입자를 받았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세입자들은 여전히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H오피스텔 피해자들에 따르면 염씨는 앞서 경기 화성 동탄과 봉담 등에서 다가구 주택 여러채를 구매해 신탁사기를 벌였다. 염씨가 벌인 신탁사기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한 피해자는 없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염씨에게 수백통의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석방 이후 강서구와 관악구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선 염씨 소식을 묻는 질문이 올라왔다. 하지만 염씨나 염씨 변호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답변은 없다.

피해자 강씨 변호인 강태양 법무법인 상유 변호사는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 회복을 노력하고 있지만 강씨가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 규모로 신탁사기를 벌였고 돌려주지 못한 보증금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피해자가 먼저 구제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했다.

염씨는 현재 서울 강서경찰서와 서울남부지검 등에서 사기,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상대로 명도소송 나선 새마을금고 "대출 원천은 고객 자금, 보호해야"
피해자 최모씨는 "지난주 새마을금고가 선임한 법무법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명도소송을 진행할 예정인데 5일 내로 결정하라고 했다. 스스로 나가겠다고 하면 3개월 여유를 주고 안 나간다고 하면 소송을 건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강서구 피해자 90명중 3명은 나간다고 했는데 나머지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보증금도 없고 현실적으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강서구 피해자 중에는 중국인, 70대 노인, 공무원시험 준비생 등 5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인 보증금이 전재산인 세입자들이 많다. 관악구 피해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일하러 온 20~30대가 대다수다. 한국어가 서툰 프랑스 유학생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염씨가 대출은 정상적으로 받고 이후에 금고와 세입자를 모두 속인 상황"이라며 "대출 원천이 고객 자금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객 자금 보호를 위해 명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세입자가 계속 살면 공매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새마을금고에서 염씨가 어떤 담보를 맡기고 얼마나 대출 받았는지는 개인 정보라 피해자에게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관악구 H오피스텔 세입자 강모씨(29)는 "얼마 전 안면마비가 왔다. 병원에서 원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며 "전세사기 사건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이어 "신탁 동의서를 받지 못해서 지금 방을 빼면 어떤 피해보상도 받을 수 없다. 불법 거주자가 됐지만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했다.

머니투데이는 염씨에게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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