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마다 우후죽순 생긴 무장애숲길, 정작 보행 약자는 못 간다···산림 훼손 우려에 휠체어 고장 사고까지
“무장애숲길을 만들어놔도 보행 약자들은 무장애숲길까지 가는 게 불가능하다보니 보행 약자 아닌 이들만 편해진 게 사실입니다.”
“말은 무장애숲길이라고 하지만 돌이 많아서 휠체어로 가는 게 불가능하거나 어렵게 간다고 해도 배수구 덮개를 지나다 휠체어 바퀴가 망가지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서울시와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28일 서울시 서소문청사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지속가능한 도시공원을 위한 서울의 무장애숲길 조성·관리방향’ 토론회에서는 보행 약자들의 숲 탐방이 가능하도록 조성한 무장애숲길이 실제 취지와는 달리 보행 장애인들을 위한 장소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행 약자의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자체들이 앞다퉈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면서 지나친 산림 훼손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무장애숲길은 서울시에만 2011년 이후 39곳이 조성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장애숲길은 보통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보행 약자들도 부담없이 산을 즐길 수 있도록 경사가 완만하게 조성한 데크형 숲길을 말한다. 나무 데크로 숲길을 덮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윤주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보행 약자들이 무장애숲길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을 문제로 꼽았다. 무장애숲길을 아무리 잘 만들어놔도 보행 약자들이 숲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교적 산림 훼손이 덜하고, 보행 약자를 포함해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의 경우도 진입로 대부분에 계단이 있거나 휠체어가 지나기 힘든 턱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캠페이너는 “숲길만 만들고, 숲길로의 접근성은 고려하지 않으면서 산림만 훼손되고, 교통 약자 아닌 이들을 위한 숲길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산림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설계 기준 등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태”라며 “평지형 공원을 중심으로 만든 건축기준 등이 경사가 있는 산림지대에 적용되면서 과도한 산림 훼손이 발생한 사례도 다수”라고 말했다. 이 캠페이너는 “무장애숲길을 만들면서 기존 탐방로를 그대로 둔 탓에 자연 훼손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본인도 휠체어 이용 당사자인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실제 보행 약자들이 무장애숲길에 가서 겪는 곤란한 점들을 소개했다. 전 대표는 “간격이 넓은 배수구 덮개를 지나다 전동휠체어 바퀴가 부러져서 수리할 사람을 급하게 부른 일도 있다”며 “돌이 많은 길은 물론 흔히 깔린 야자매트 구간의 경우도 수동 휠체어로는 지나기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 장애인들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얕은 턱 때문에 수돗가라든가 흙먼지털이기 등 편의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 내 무장애숲길 11개소의 경사도 분포현황 및 산사태 위험등급 분포를 확인한 결과 일부 구간이 산사태 위험이 매우 높음, 또는 높음에 해당한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기후재난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민 안전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확인된 것이다.
최근 조성되고 있는 은평구 봉산 무장애숲길의 경우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침해하면서 조성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평구는 봉산 무장애숲길을 연장할 계획인데, 추가되는 구간도 보전지역의 산림을 훼손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무장애숲길들도 경사지에 데크를 설치하다보니 불필요한 산림 훼손을 일으키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곳이 많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관은 서면을 통해 “데크길은 미세먼지를 재비산시켜 숲이 지닌 대기오염물질 흡착 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데크로 인해 햇빛과 낙엽의 흐름이 차단될 경우,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 및 저장 기능은 저하되고, 생물다양성 서식지로서 기능도 낮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정훈 서울시 자연생태과장은 “무장애숲길에 대해 시민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다 보니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진행한 측면이 있다”며 “무장애숲길 중 일부는 환경적·생태적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정해진 구간만 이용할 수 있도록 데크를 설치하는 것 역시 숲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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