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강형욱과 피식대학의 사과를 어떤 잣대로 판단하십니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극이 아닌 대중문화 콘텐츠를 아우르는 거대한 흐름은 그 형태나 장르가 뭐가 됐든 진정성을 향해 달리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오디션쇼든, 스포츠쇼든, 연애든, 관찰예능이든, 리얼리티쇼든, 술상 앞에 앉은 토크쇼든, TV든, OTT든, 유튜브 콘텐츠든 모두 카메라를 매개로 하고 있지만 출연자와 소비자(시청자, 구독자)가 카메라의 존재를 잊을 만큼 최대한 친밀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필하는 것이 기획의 묘다.
콘텐츠의 성패도 대중과의 높은 정서적 친밀도와 신뢰 여부와 연관이 크다. 그만큼 목소리와 영향력도 커졌다. 이런 양상은 대부분 예능의 역사가 그렇듯 <무한도전>에서부터 본격화됐다. 플랫폼의 격변, 시청 양태의 전환, SNS의 DNA화가 일상화된 지금, 진정성에 대한 기대는 더욱 맹렬해지고 광범위해졌다. 콘텐츠와 수용자간의 소통을 넘어서 콘텐츠 너머에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그들의 삶까지 진정성이 담보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진정성은 만능키가 아니다. 콘텐츠를 둘러싼 소통의 기반일 순 있지만 제한된 정보를 극복하고, 수치화하고, 과학처럼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슈, 판단의 영역에서 진정성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콘텐츠를 둘러싼 소통으로 작동하는 힘과 달리 우리가 알 수 없는 진실이나 다툼, 내부 사정을 미뤄 짐작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내세우기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편향에 갇혀서 상처를 만드는 무분별한 올가미가 될 수도 있을 만큼 불안정하다. 포수의 미트질에 움찔거리듯 기자회견 한 번에 휩쓸리고, 쌍심지를 켜고 열렬히 비토 하거나 응원하다가 잘 정리된 입장 표명이나 판결 앞에 머쓱해지기 일쑤다. 심지어 며칠 후 수갑을 찰지언정 호소할 수 있는 게 진정성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인 민희진, 강형욱, 피식대학, 김호중 등은 각기 다른 사안과 수준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공통적으로 진정성이 문제 혹은 방어 무기가 됐다. 김호중은 거짓 호소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시간을 벌었고, 민희진은 KBO에서는 이제 통하지 않는 프레이밍으로 반전 여론을 일부 이끌어냈다.
강형욱과 피식대학은 논란이 벌어지고 일주일 정도 후 각각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한 입장 표명과 사과 과정을 담은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들이 왜 대중 앞에 즉각 나서지 않았는지가 비로소 드러났지만 그 사이 이미 강형욱과 피식대학은 진정성 공격으로 언론과 여론에 의해 처참하게 물어 뜯겼다. 문제가 생겼다면 따져보고, 살펴보고, 나름의 전략이 필요한 법인데,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항복만이 진정성 있는 사과라 감정했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정서적 연대를 이루는 핵심이지만, 진정성이 깃발이 되는 순간 소통은 일방적으로, 연대는 관계의 단차로 돌변한다. 강형욱의 경우 첨예하게 갈리는 입장 차이,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논란을 해소한 부분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간의 활동과 메시지 자체의 진정성을 부정당하는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피식대학은 더 심각하다. 명백히 잘못한 사안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지적이나 비평, 비판에 그치지 않고 채널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회피나 프레이밍, 퍼포먼스 없이 진솔하고 담백한 사과문을 내놓았음에도 사과의 진정성을 부정당했다.
영양 편은 분명 부주의했다. 특정할 수 있는 누군가의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현저했으며, 수도권 집중화를 뒤집는 경상도 프라이드 코미디와 결이 맞지 않다보니 맥락을 뒤집으며 만든 웃음 포인트가 폐부를 찌르는 창이 됐다. 이 부분에 대한 비판, 비평, 사과 요구는 당연하다. 그런데, 이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거나 늘 문제가 있었던 집단으로 그리는 견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이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판단한 근거는 아직 단 하나도 나온 게 없다. 이들이 인기에 취해 오만해졌다는 근거도 딱히 찾을 수 없다. 영양편의 튄 콘셉트는 안동 편에서 나온 맥락을 콘텐츠화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다분한데 반해 이들 집단의 문제가 누적되고 지속되던 흐름 속에 결국 터진 사건이라고 볼 근거는 약하다.
사과문 이외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건방져져서인지, 그냥 넘기기 위함인지, 사과의 방식을 찾기 위함인지, 어떤 이벤트가 걸려 있어서인지 취재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기사를 본 적이 없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여론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기사'나 '평론'이란 이름으로 일종의 검인증 마크를 붙이는 작업은 활발하다. 사과문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독자수 감소를 경마식 보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썸네일 의혹까지 붙여서 원래 문제 있는 집단이었다는 식으로 비난을 가하는 데 이상하다. 장원영 편은 팬덤의 호의적인 반응은 물론 콘텐츠 자체도 특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이미 대박이 났는데, 영양편 논란 이후 갑자기 문제가 됐다.
대중문화에서 말하는 진정성은 소통과 정서적 유대의 근간이다. 강형욱도, 피식대학도 지금의 사랑을 받게 된 과정을 알기 때문에 진정성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게 들 수는 있다. 그런데, 강형욱 건에서 보듯 팩트체크의 기본인 교차검증도 없이 폭로에만 몰두하는 언론과 이에 편승해 진정성이란 두건을 두르고 우르르 몰려가 표적을 만드는 여론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점점 짙어지는 황색언론과 사이버렉카의 난립까지 더해져 '나락'은 자조적인 코드의 밈을 넘어섰다. 후드려 패는 둔기가 진정성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락밈'은 삐뚤어진 성장 욕망일 뿐이다. 잘못과 진정성의 분리가 되지 않으면 떨어지는, 떨어뜨리는 데 쾌감과 권능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중도 때로는 자중을 해야 한다. 질타에 거침없듯이 가열 찬 자기반성 또한 필요하다. 판단에 있어서 신속함보단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제는 학습할 때도 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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