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아파트를 전액 대출로 매입하는 방법 [취재파일]

고정현 기자 2024. 5. 2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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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아파트 현금으로 턱턱 매입…'영앤리치'의 등장?

최근 20~30대가 100억 원 안팎의 초고가 아파트를 현금 매수해 화제가 됐습니다. 코인 등으로 수익을 거둔 '영리치'들이 등장한 것 아니냐며 많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방송인 장윤정·도경완 부부의 나인원한남 아파트를 1989년생이 120억 원에, 한남더힐 아파트는 1998년생이 94억 5000만 원에 근저당 설정 없이 매입했습니다.  서울 강남구 소재 A아파트도 30대 매수자에게 80억 원에 팔렸는데, 근저당이 15억 4000만 원만 설정돼 70억 원 안팎의 매입 자금은 현금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 결과, A아파트는 32살 B 씨가 매입가 80억 원 전액을 대출로 충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DSR, LTV 등 각종 대출 규제가 있는데 어떻게 전액 대출로 초고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었을까요? 
 

주택담보대출 14억·주식담보대출 66억…80억 아파트 거래액 전액 대출

B 씨는 C사 대표의 자녀입니다. 300억 원 상당의 C사 주식을 부친으로부터 몇 년 전 증여 받았습니다. 최대 50%에 달하는 증여세를 내기 위해 해당 주식을 담보로 연부연납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B 씨는 올해 초 한강변에 위치한 A아파트를 80억 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4월 XX일 잔금을 치렀습니다. 근저당이 15억 4000만 원 설정됐는데, 통상 대출 원금의 110~120% 금액을 근저당 설정하는 관례에 비춰보면 14억 원을 주택담보대출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B 씨는 4월 XX일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도 66억 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주택담보대출 14억 원과 주식담보대출 66억 원을 합치면 80억 원입니다. 아파트를 매입하면 부대 비용이 발생합니다. 80억 원 아파트 취·등록세는 2억 8000만 원 정도일 것으로 보이며, 부동산 수수료는 5600만 원(요율 0.7% 적용) 정도로 추정됩니다.
 

주식담보대출은 LTV 규제 대상에서 제외

아파트를 매입하려면 각종 대출 규제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먼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A아파트가 속한 서울 강남구는 투기과열지역으로 규제돼 LTV가 50%까지 적용됩니다. 주택담보대출을 아파트 가격의 절반까지만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A 씨는 아파트 가격의 14.5%인 14억 원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식담보대출은 자신의 별개 재산으로 담보 대출을 받은 것이라 LTV 적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만 4억 원 정도…연 소득 10억 원은 넘어야

다음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연간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하는 항목입니다. 통상 원리금 상환 액수가 연 소득의 40% 이내여야 대출이 나옵니다. DSR에는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주식담보대출까지 다 합산됩니다. B 씨가 14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어떤 조건으로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40년 만기에 4% 이율로 원리금 균등 상환한다는 조건을 적용해 보면 B 씨는 1달에 585만여 원을 갚아야 합니다. 1년 간 대략 7000만 원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합니다. 주식담보대출 66억 원은 1년 간 4.95% 이율로 빌렸습니다. 주식담보대출은 통상 매월 이자만 갚고, 만기 때 일시에 원금을 갚는데 갱신이 가능합니다. B 씨는 1년 간 이자만 3억 2670만 원을 내야 합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주식담보대출을 합쳐 원리금 상환으로 1년 간 대략 최소 4억 원을 써야 하는 거죠. DSR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연간 소득이 10억 원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배당액 연간 15억 원 추정…"세금 납부는 상환 능력에서 제외"

앞서 설명한 것처럼 B 씨는 C사 주식을 증여 받았습니다. C사는 배당율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취재 결과, B 씨는 최근 1년 간 15억 원의 중간·결산 배당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DSR 통과에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B씨는 증여 받은 주식이 만들어내는 배당액을 통해 대출 규제 문턱을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매년 납부해야 하는 수십 억 원의 증여세는 대출 과정에서 평가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 3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증여 받을 때 추정 증여세는 140억 원 정도입니다. 매년 28억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겁니다. B 씨에게 주식담보대출을 해준 D사는 "담보가 제공되더라도 차주의 상환능력은 살펴본다"면서도 "증여세 같은 세금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B 씨 "정당한 금융거래…증여세도 성실 납부 중"

B 씨 대리인은 "B 씨는 소득이 높은 중견 전문직업인으로 독립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실거주를 위해 해당 아파트를 매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LTV 등 금융 규제는 금융기관 부실 예방 차원에서 담보물 가치나 소득 등에 비하여 과중한 부채를 부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인데, B씨는 보유 자산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본인 소득 등에 기초해 정당한 금융거래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세금과 중개수수료 등 부동산 거래 부대 비용은 3억 원 정도로 근로 소득 등 개인 자금으로 충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증여세도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당국 "문제 없어" VS 시민단체 "부동산 시장 영향 줄 수 있어"

초고가 아파트를 100% 대출로 매입한 걸로 보이지만, 금융 당국은 "법적인 문제는 없고 편법도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본인의 유가 증권 자산을 가지고 담보로 아파트를 구매하는 것이라 규제 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주식담보대출은 이자율이 주택담보대출보다 높다"며 "주식을 팔아 현금화 해 아파트를 매입하면 전혀 문제 없는 것을 담보 대출을 받았다고 규제할 순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대출 규제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인데, 당국이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주식담보대출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와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규제가 없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B 씨가 매입한 아파트와 같은 층수·같은 면적이 최근 89억 원에 계약 체결됐습니다. B 씨가 80억 원에 계약을 체결한 지 몇 달 만에 9억 원이 뛴 겁니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그리고 관할 지자체인 서울 강남구 모두 주식담보대출이 주택 매입에 얼마나 사용되는지 집계한 통계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고정현 기자 yd@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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