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에 美 주식만 주워 담는 ‘서학 개미들’

김지섭 기자 2024. 5. 2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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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센터 “기술주 고평가, 달러 약세 전환 유의해야”
해외주식 중 美에만 90%, 기술주 비율 50%
쏠림 현상 심화

직장인 이모(38)씨는 올 초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주식에 2500만원쯤 투자해 2배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AI, 로봇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샀는데 올해 수익률이 10%를 넘는다. 이씨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는 반도체, AI, 로봇 분야에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미국 주식 투자가 필수”라며 “국장(국내 주식시장)은 쳐다보지 않은 지 꽤 됐다”고 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들이 미국에만 90% 가까이 투자하는 등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로봇, 가상 자산 등에 대한 투자 열풍에 이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들로 몰려가는 것이다. 올 1분기(1~3월) 해외 주식 순매수 상위 10종목 중 미국 기술주 투자 비율만 49%에 달해 미국 테크주 쏠림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일러스트=백형선·Midjourney

◇해외 주식 중 美 비율 90% 육박

28일 국제금융센터 신술위 책임연구원이 낸 ‘내국인의 해외 투자 현황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해외 주식 중 미국 주식 비율은 20일 기준 89.3%에 달했다. 2위인 일본 주식(4.8%)의 18배가 넘는다. 홍콩(2.1%), 중국(1.1%), 유럽(0.4%) 등 다른 주요국 주식 비율도 미미했다. 미국 주식 쏠림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미국 주식 비율이 2022년 말 79.9%에서 작년 말 88.5%로 늘었고, 올해 추가로 1%포인트 가까이 더 불어난 것이다.

미국 주식 중심으로 해외 투자가 늘면서 국내 투자자의 해외 증권(채권 포함) 순 투자 규모는 지난 2월 90억5000만달러(약 12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등 글로벌 주식시장이 ‘V 자’ 반등세를 보인 2021년 12월(121억4000만달러)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많은 금액이다.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액이 지난 27일 기준으로 13조4000억원쯤 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픽=백형선

◇AI·로봇 붐으로 美 주식 각광

개인들이 앞다퉈 미국 주식을 투자 바구니에 담는 건 AI와 로봇 붐에 미국 기업들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AI 등 첨단 IT 분야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리서치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AI 시장은 작년 2000억달러에서 2030년 2조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만5000개의 AI 기업이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AI 기업 수(8900개)의 1.7배에 달한다.

AI 반도체를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경우, 올해만 주가가 120% 넘게 올랐다. 기술주 중심의 미국 나스닥 100 지수를 따라 움직이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ETF’와 마이크로소프트·애플·엔비디아 등의 주식을 담은 ‘뱅가드 IT 업종 ETF’ 등의 올해 수익률도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신술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개인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 중에서) 반도체주 등 기술주 위주로 매수를 확대하는 한편 고위험 투자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1분기 개인 투자자들은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인텔·마이크로스트래티지 등 미국의 IT 관련 주요 4종목을 17억1000만달러어치 순매수했다. 이는 해외 주식 투자 상위 10종목 순매수액(35억달러)의 절반에 가깝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데다 미국 기준 금리가 올해 두 번 정도 인하되면서 기술주, 성장주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서학 개미가 미국 기술주에 모여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미국 테크주 투자 쏠림 우려도

하지만 미국 기술주 투자 쏠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 랠리(급상승세)를 이끈 대형 기술주들의 고평가 부담이 커진 데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경우 달러 약세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연구원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조사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51%가 미국 7대 빅테크인 ‘매그니피센트7(M7)’ 주식 투자에 시장 자금이 가장 많이 쏠린 것 같다고 응답했다”며 “미국 주식 집중 투자의 위험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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