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 '새마을연극' 2024년의 시선은

한순천 기자 2024. 5. 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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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정권 유지에 활용된 차범석 작품
원작 각색 없이 그대로 무대재연
윤한솔 연출 "프로파간다 메시지
현대에도 가능한지 스스로 질문"
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강민지(왼쪽부터)와 연출자 윤한솔, 상석 역의 배우 구도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서울경제]

예로부터 통치자들은 예술을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이용해 왔다. 수많은 종교 음악과 종교 미술, 오페라들이 그랬고, 공산주의 사상의 프로파간다를 담당했던 아지프로(agitation propaganda) 문학과 아지프로극이 그랬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은 정권 유지와 민중 계도를 위해 ‘새마을연극’을 이용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국내 대표 극작가 차범석도 국민의 자조자립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희곡을 썼다. 정권을 위한 선전·선동의 컨텍스트로 가득 찬 연극 ‘활화산’을 쓴 차범석의 부역은 당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에게 흑역사로 남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활화산’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자 윤한솔(가운데)가 극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어찌 보면 국립극단에게도 흑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연극 ‘활화산’이 국립극단의 손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초연 당시 사실주의 연극이었던 원작은 각색과 윤색 없이 그대로 무대에 오른다. 27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한솔 연출은 “프로파간다가 2024년에도 가능한 건지, 가능하다면 어느 지점에서 가능한 건지 스스로 질문했었다”며 “그 당시 시대상을 수정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지점을 통해 공명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극의 줄거리는 지극히 도식적이다. 봉건적 집안의 며느리 정숙이 몰락한 집안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돼지를 키우고, 이에 감화받은 농촌 주민들도 자조·자립에 나선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성을 노동력으로 전환하고자 했으며, 3년상으로 대표되는 농촌의 불필요한 구습을 타파하고 가난의 책임을 자신들이 아닌 자립하지 못하는 농민에게 돌리려고 했다. 정숙의 “내가 돼지를 키운다카이까네 흉도 많이 본 줄 압니더. 만도 우리 농촌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날라문 뭔가 해야지 않겠십니꺼! 빈손 쥐고 하늘만 쳐다본다카이 누가 보리 한톨 대 줍니꺼!”라는 대사가 이를 보여준다.

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기자간담회에서 윤한솔 연출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극단

차범석은 활화산에 대해 “해방 후 20여년간 빗나간 제압 아래 시달려 온 우리가 이제는 떳떳이 소리 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각성의 소리를 ‘활화산’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당대에도 “우리가 현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의 연극화를 내세운 이 연극은 온갖 구제도의 폐습을 느릿느릿한 템포로 천편일률적인 사건으로 전개한다”고 혹평받았다.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사진 제공=국립극단

5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 작품은 지금 다시 보면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다. 교조적인 목소리로 가득 찬 이 작품은 현대 관객들이 보기에는 우습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듯한 작위적인 대사들과 지문은 관객들에게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부자연스러운 문맥은 선전선동극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을 역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윤 연출은 “마지막 연설은 히틀러의 연설을 참고했다”며 “집단적 광기와 움직임에 자신이 동참하는 장면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사진 제공=국립극단

다양한 연출적 장치들이 이런 극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한다. 1부 중반까지 사실적으로 진행되는 듯하던 연극은 1부 말미에서부터 이 연극이 현실이 아님을, 현실이 아니어야 함을 드러낸다. 윤 연출은 “연극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부 마지막, 노년 배우들의 노래와 함께 제4의 벽이 깨지는 장면부터 작품은 사실주의 연극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2부에서 무대를 채우는 거대한 돼지 오브제와 비현실적인 크기의 감, 수인들과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돼지 울음소리가 관객들을 일깨운다. 배우들의 연기도 더욱 과장된다. 윤 연출은 “집단적 광기를 표현해보고 싶었다”며 “현대 사회에서 그런 장면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권력의 주구가 된 예술은 빛을 잃는다. 예술의 자유가 퇴색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공연은 다음달 17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다.

국립극단 연극 '활화산'. 사진 제공=국립극단

/한순천 기자 soon1000@sedaily.com 한순천 기자 soon100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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