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들, 대통령실에 공개질의…"의료개혁, 이대로 괜찮나"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4. 5. 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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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尹지지율 오르는 듯 보여도 의대증원 강행시 '의료붕괴' 손가락질 받을 것"
1차의료 강화 등 진료체계 재정비부터 촉구…"의료개혁도 연금개혁처럼 절차 중요"
"원점 재검토, '증원 0명' 의미 아냐…증원 꼭 필요해도 일시 1500~2천명↑엔 비동의"
28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언론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3기 비대위원장을 맡은 강희경 서울대병원 교수가 '대통령실 레드팀'을 향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이 확정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대병원 의과대학 교수들은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정부의 의료개혁, 이대로 좋은가"란 공개 질의를 던졌다.

이들은 정부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등 국내 의료의 고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등은 외면하면서, 추진 시 파급효과도 불투명한 의대 증원에만 목을 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정한 수치(증원 규모)가 국민의 절망과 우리나라 의료계, 관련 산업의 붕괴보다 더 중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오는 30일 교육부가 현행 대비 1509명이 늘어난 4567명을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인원으로 발표 예정인 점과 관련해 증원 확정 시 전공의·의대생이 돌아올 자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현장 의견이 반영된 개혁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증원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대화를 시작하자고 거듭 촉구했다.

"의료개혁도 절차가 중요…강행시 尹, '의료붕괴자' 손가락질"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 간담회를 열고 '대통령실 레드팀께: 의료개혁, 이대로 좋습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레드팀(Red Team)이란 반대편 입장에서 조직 내부의 취약점을 사전에 발견해 경고하는 일종의 자정기구를 이른다.

앞서 대통령실은 최근 발표했던 '해외 직구(직접구매) 차단' 정책을 놓고 반발과 논란이 커지자, 이를 즉각 철회하고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후 정책 구상 단계부터 공청회·여론조사 등 국민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레드팀 기능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대통령실 레드팀을 지명해 "의대 정원 증원이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된다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현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입법이 무산된 연금개혁에 대해 '쫓기듯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수치보다는 타협 절차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점을 들어 "동의한다. (의료개혁도) 근거가 부족한 2천 명(증원), 대학 자율로 정해진 1509명의 수치보다 타협 절차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또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용기도 지도자의 덕목"이라며 "의료 개혁이 현장 의료진과 국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올바른 정책이 되도록, 부디 대통령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필수·지역의료 강화부터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전공의 처우 개선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이 미룰 수 없는 과제란 데엔 동의하면서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올바른 개혁을 위해선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타협의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붕괴 직전인 필수의료 인프라가 되살아나려면, 의료기관 종별에 맞는 진료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주장했다. 의사 증원 필요성을 역설하는 정부 정책의 전제는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 전망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과도한 의료이용'이 유지된다는 가정 시 유효한 수치라는 지적이다.

비대위는 시민 공모를 통해 파악한 국민들의 개혁 시나리오가 주치의 제도 등 1차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고 짚으면서 "(이렇게 되면) 만성질환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상급종합병원은 꼭 필요한 경우 방문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의대 증원은 이에 비해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 효과도 알 수 없다"며 '강압적으로' 추진할 이유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안보·치안 등과 같은 반열에서 보건의료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를 약속한 정부의 예산 편성 방침을 두고는 "정부의 다양한 약속들이 규정·재정의 문제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정권의 실적'이 아닌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정책'을 만들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안정적 재원 기반과 법적 구속력을 갖춘 기구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 계획을 세우고 실제 집행해 달라는 취지다.

"원점 재검토=증원 0명 아냐…정부 양보시 전공의 복귀 설득"


곽재건 서울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이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령 증원이 불가결하다 해도 현 정원의 절반(49.3%)을 한꺼번에 늘리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비대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의하면 의대 정원이 10% 이상 변경되면 의대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며 "해외 의료선진국에선 10~20년에 걸쳐 차근차근 증원을 실행한다.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도 한 번에 '10% 미만'의 증원이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의대에서 진행 중인 '의사 수 추계 연구공모' 결과가 나와 적정 의사 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토대로 시설·교수진을 먼저 확보하고 학생 수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도 부연했다.

이와 함께 의료계가 초지일관 내세우고 있는 '원점 재검토'가 '증원 0명'(현행 유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재차 밝혔다.

서울의대 흉부외과학교실 곽재건 부교수는 "저희가 무작정 '의대 증원은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다. '원점 재논의', '백지화'란 게 (증원)정원이 0이어야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 과정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충분하다면 저희도 (진료 등 업무가) 힘들어서 더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생 증원에 대해 얘기할 때 카데바(해부실습용 시신)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건 그냥 상징적인 의미다. 카데바(수급)만 문제가 아니다"라며 제가 의대 공부할 때 190명이 함께 공부를 했는데 몇 십 년간 많이 좋아졌더라. 아직도 (교육환경이) 좋아져야 할 부분이 많이 있는데 느닷없이 2천 명, 1500명을 늘려서 이걸 어떻게 감당하겠나"라고 반문했다.

2기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도 "정부가 만약 원점 재검토를 해주신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우리 교수부터 제대로 잘할 테니 제발 돌아와서 필수의료를 같이 하자', '제대로 된 의료개혁을 이뤄서 의사도 환자도 행복하자',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정말로 제자들에게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비대위는 이같은 '원점 재논의'가 바로 정부가 의료계에 요청하는 '조건 없는 대화'라며 "대량 증원은 무를 수 없다며 조건을 걸고 있는 것은 의료계가 아닌 정부"라고 지적했다.

차기 22대 국회를 향해서는 "비록 정부의 일방적 약속 불이행으로 지금은 휴지 조각이 되었으나, 2020년 여름 의료계 공백이 한 달 만에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국회 주도로 의·정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2020년 의정 합의가 이제라도 지켜지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료 전문가 집단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기구를 설치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충분한 논의를 가져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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