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덴마크 입양인 "대구에 살던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형제·친척이라도 만나고 싶어요"
제릭 박 비스가드 씨(57세)는 1967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한국 나이로 6살 때 덴마크로 입양됐습니다.
'6살이었다면 한국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 추억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 낯선 모습을 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보내지면서 충격이 컸던 탓일까,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의 향기(냄새)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번데기'를 기억해요. 항상 거의 매일 배가 고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생년월일과 이름 등 자신에 대한 정보는 덴마크로 입양 보내졌을 당시 아동 보호 기관이 작성한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입양 자료에 따르면 비스가드 씨의 한국 이름은 박상조이며, 생년월일은 1967년 1월 9일입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대구에 있는 한 아동 보호 기관(당시 고아원으로 불렀던)에 맡겨졌고, 1971년까지 그 기관에서 살다가 1972년 서울의 아동 보호 기관으로 보내진 뒤 입양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입양 기록지에 남은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1988년 고국 땅을 밟은 비스가드 씨
비스가드 씨는 지난 1988년 해외 입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국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늘 기억 속에서 잔상으로 떠올랐던 번데기도 드디어 맛보았습니다.
비스가드 씨가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결심한 것도 그때 1988년입니다.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관련 기관을 찾아가는 등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자신에 대한 나머지 기록과 정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입양을 진행했던 아동 보호 기관은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1967년생 박상조'라는 작은 조각만으로는 가족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2024년 4월,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스가드 씨의 입양을 담당했던 기관으로부터 친부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비스가드 씨 친부 이름은 '박ㅇㅇ', 본적 그러니까 등록기준지가 '대구시 남구 대명 3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친부는 1997년 사망했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열 일을 제쳐놓고 당장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주소를 알았으니, 어머니나 혹시 있을지 모를 형제와 친척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해외 입양인을 돕는 한국 민간 단체에 도움을 구했습니다.
비스가드 씨는 5월 24일 사회적협동조합 '배냇' 김민정 경북팀장과 함께 대구 남구청을 방문했습니다.
남구청에 비스가드 씨의 딱한 사정을 설명했고, 친부로 추정되는 박ㅇㅇ 씨의 가족관계증명서 발부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이 걸림돌이었습니다.
남구청 3개 과 직원 10여 명이 정보 수집에 매달렸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남구청 관계자는 "친부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하면 형제나 친척을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증명서를 떼려면 비스가드 씨와의 부자 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면서 "안타깝지만,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족을 찾으려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려는 건데 가족임을 입증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결국, 열쇠를 쥔 건 입양 담당 기관
비스가드 씨는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내준 입양 담당 기관 직원에게 친모 이름이나 그밖에 다른 정보를 더 줄 수 없느냐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도 이메일을 보낸 직원은 현재 업무를 맡고 있지 않아 연락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했으나, 입양 기록을 쥐고 있는 기관은 입을 꾹 닫았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배냇 김민정 팀장은 "입양 담당 기관의 한 직원이 선의에 의해 양심에 따라 비스가드 씨에게 친부의 정보를 담은 이메일을 보낸 것 같다"라면서, "오랫동안 해외 입양인을 도와 왔지만, 이렇게 기관에서 정보를 준 경우는 처음 본다. 굉장히 이례적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6·25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은 22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많은 해외 입양인이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입양 담당 기관은 "정보가 없다"는 말로 이들을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이 해외 입양인의 뿌리 찾기를 돕고 있지만, 이들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동권리보장원조차 개별 입양 기관이 가진 자료를 직권으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 입양인이 아동권리보장원에 입양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 기관에 정보를 달라고 요청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입양인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최근 관련법이 개정돼 각 입양 기관에 흩어져있는 자료가 일원화되어 우리 기관으로 이관되면 해외 입양인 가족 찾기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개정법이 2025년 7월 시행될 예정으로 그전에는 아동권리보장원에서 개별 입양인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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