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정상회의: 포용외교 개시의 분수령이 되다

선경철 2024. 5. 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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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우여곡절 끝에 2024년 5월 26∼27일 이틀간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2011년 9월 출범한 3자 협의체로 3개 국가가 교대로 2년씩 사무총장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최근 국제정치가 신냉전 역학에 직면한 가운데 오커스 등 소다자 협의체가 주목받고 있는데 한일중 정상회의는 이보다 앞서 출범한 동북아 소다자 협의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냉전 구도라는 도전에 직면해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유사 입장국과 비유사 입장국이 모두 포함된 소다자 협의체라는 성격이 발목을 잡은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이후 4년여 만에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동북아 소다자 협의체가 제 기능을 찾는 단초가 됐다.

3국 정상은 이번 회의를 통해 공급망 안정, 인적 교류, 공중보건 등에 대해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회의 후에는 공동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번 회의에서 3국 정상회의 정례화 및 협력 제도화 추진에 합의한 것은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3자 경제협력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확인한 부분이다. 3국 정상과 경제인이 소통하는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자리가 마련된 것은 이러한 의지를 정책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일중 정상회의 성과는 단지 3자 회의에 그치지 않는다. 한중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양자외교를 통해 외교안보대화 신설, 공급망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한일도 양자 정상회담을 가져 수소 공급망 협력을 모색하고 셔틀외교도 잘 이어가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서울에서 개최했다는 점에서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는 한국 특유의 포용외교 개시의 분수령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약 2년간 안보외교를 통해 안보달성 기초를 굳건히 다지는데 진력해 왔다. 대표적으로 역대 최강 한미동맹을 통해 탄생한 핵협의그룹(NCG)과 한미일 안보 아키텍처를 들 수 있다.

한편 안보외교는 본질적으로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에 방점을 둔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비유사 입장국과의 소통 강도가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유사 입장국인 중국도 포함된 소다자 협의체가 성사됨으로써 한국의 외교가 1단계인 안보외교에서 2단계인 포용외교로 진화되는 첫발을 내딛는 기회가 됐다. 한국 정부는 이미 ‘포용’ 원칙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2022년 발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3대 협력원칙 중 하나로 ‘포용’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포용외교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비유사입장국인 중국과 소통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도 한국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최근 한중 양국은 소통 강화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보여왔다.

한국의 포용외교 정책화는 최근 한중 양측이 관계 개선을 이루고자 노력해 온 여건 조성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지난해 9월 한국 대통령과 중국 총리는 아세안 계기에 양자회담을 통해 한일중 정상회의 추진 동력을 살렸다. 이후 한국의 국무총리는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한 후 이 계기에 중국 주석과 회담을 진행했다. 이러한 정상급 인사의 외교전선 관리는 11월 부산에서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로 이어졌고 올해 5월 조태열 외교장관의 베이징 방문을 통해 성숙했다. 이러한 외교 마라톤을 거치며 마침내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성사됐고 의미 있는 성과도 달성했다.

포용외교 정책화의 사례인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는 세 가지 차원에서 그 함의를 진단해 볼 수 있다.

첫째, 유사 입장국이 비유사 입장국과도 협력의 공간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신냉전 구도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포용외교 정책화 현시로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의 신인도도 높아지는 시너지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지지부진했던 한중 정상회의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다자회의 계기에는 양자외교도 활성화된다. 마찬가지로 이번 3자 회의에서도 한중 양자회담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한중 외교안보대화 신설에 합의했고 한중 FTA 협상 재개의 물꼬도 트였다. 교착상태가 풀리고 있는 한중관계의 동력을 잘 살린다면 명실상부한 한중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다. 외교 관례상 시진핑 주석의 한국 답방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일중 정상회의는 이러한 외교 관례가 현실화하는 초석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셋째, 앞으로 시험대를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소다자 협의체는 오커스, 쿼드, 한미일 협의체 등 다른 소다자 협의체와 지속해서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한일중 정상회의가 작은 변수 하나로 인해 다시 멈추기라도 한다면 신냉전 시대에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소다자 협의체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일중 정상회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인식으로 후속 조치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또 후속 조치에는 포용외교의 성격을 잘 살리려는 노력이 반드시 담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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