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최초, 또 최초…불교미술, 그 너머의 ‘여성들’ [요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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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불교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얼마나 간절하게, 그리고 맹렬하게 성불했을까.
'여자의 몸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불교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차별받았지만, 그럼에도 좌절되지 않은 여성의 신앙은, 그리고 내면은 얼마나 크고 단단했을까.
불교미술과 그 너머에서 다채롭게 존재한 옛 여성들이 전시장에서 되살아나 말을 건다.
그동안 여성은 불교미술사 연구에서조차 간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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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여성은 불교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얼마나 간절하게, 그리고 맹렬하게 성불했을까. ‘여자의 몸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불교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차별받았지만, 그럼에도 좌절되지 않은 여성의 신앙은, 그리고 내면은 얼마나 크고 단단했을까.
작품마다 ‘한국 최초 공개’ 타이틀이 붙은 호암미술관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단 한 줄로도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하는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흩어진 불화,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불교미술 걸작 92점이 한데 모였다. 불교미술과 그 너머에서 다채롭게 존재한 옛 여성들이 전시장에서 되살아나 말을 건다. 한 번도 조명된 적 없던 관점으로 불교미술을 풀어낸 ‘역대급’ 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그동안 여성은 불교미술사 연구에서조차 간과됐다. 불교미술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도 주로 석가모니를 낳은 어머니거나 시체였다. ‘여성성’의 규범에 갇히거나 정념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용된 것.
“이전 겁(劫)의 불행으로 인해 여자의 몸을 받았다. 다음 생애는 남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 오죽하면 고려시대 당대 최고 권력자의 아내 또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진한국대부인 김씨는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조성하면서 발원문에 이렇게까지 남겼을 정도다.
그러나 성별을 떠나 여성은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 즉 깨달음의 과정에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었다. 이 지점에서 불교미술이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승혜 큐레이터는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가장 열렬한 후원자이자 제작자”라며 “여성의 공헌이 없었더라면,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모습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조의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가 금자로 한 자 한 자 정교하게 필사한 ‘백지금자 불설아미타경’에서는 역모로 몰려 죽은 가족의 극락왕생을 빈 절실한 마음이 읽히고, 어느 여인이 머리카락으로 한 땀 한 땀 성스럽게 수놓은 자수 불화에서는 극락정토로 가기 위한 의지가 엿보인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불교미술품이지만, 그 안에 깃든 절절한 사연을 만나게 되면 쉽사리 발길을 뗄 수가 없는 이유다.
특히 ‘백제의 아이돌’이라는 별칭을 가진 금동관음보살입상은 9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계란형 얼굴에 긴눈과 날렵한 콧날,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살짝 비틀어 취한 자세, 뒷면 옷 주름의 음영과 몸의 굴곡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이 불상의 형상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구분 자체를 무색케 만든다. 무엇보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되는 생김새다.
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1907년 충남 부여 규암면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수집가인 이치다 지로가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됐고, 2018년에 이르러서야 행방이 알려졌다. 당시 한국은 42억원을 주고서라도 환수하려고 했지만 소장자가 150억원을 제시해 협상은 불발됐다. 이승혜 큐레이터는 “불상을 빌려오기 위해 소장자 측과 접촉했고 막판에 성사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이건희 컬렉션은 물론,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등의 전 세계 불교미술품이 대거 포함됐다. ‘석가탄생도’가 ‘석가출가도’와 세계 최초로 나란히 걸리고, 전시 기간 후반에 이르러 12점의 작품이 새로 선보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관람료 1만4000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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