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이란 고농축 우라늄 증가”···라이시 사망 이후 ‘이란 핵 합의’ 안갯속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의지를 보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란의 핵무기와 우라늄 개발 정책 방향이 미지수로 남게 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라이시 대통령 사망 이후 이란 정부가 핵 비확산 협상을 중단했으며, 고농축 우라늄 보유량을 급격히 늘렸다고 밝혔다. JCPOA 당사국인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향후 대이란 정책 방향성을 두고 갈등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IAEA는 27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내고 지난 11일 측정한 이란 내 60% 농축 우라늄 비축량이 142.1kg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적힌 양보다 20.6kg 증가했다.
미 당국자들은 이 수준이라면 이란이 불과 며칠 만에 핵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우라늄을 더 짙게 농축할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3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통상 핵무기는 90% 이상 농축 우라늄으로 만든다.
IAEA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전체 비축량은 6201.3㎏으로, 직전 보고서 대비 675.8㎏ 증가한 것으로 측정했다.
IAEA가 집계한 이란의 농축 우라늄 보유량은 2015년 체결된 JCPOA 기준치를 훨씬 웃돈다. JCPOA에 따르면 이란은 저농축(3.67%) 우라늄을 최대 202.8㎏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IAEA는 지난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에브라힘 라이시 전 이란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이란과 IAEA 간 핵사찰 실무 협상도 사실상 중단됐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또 핵시설 감시 카메라를 재설치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도 진전이 없으며, ‘비밀 핵시설 활동설’과 관련해 이란 정부에 정확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늘린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이란의 핵 억제 정책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다음 달 IAEA 이사회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계획인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말리고 있다.
유럽 외교관들은 이 같은 미국의 압박에 반발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란의 핵 활동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핵 비확산을 관장하는 IAEA의 권위가 손상되고, 서방의 대이란 압박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이 이란 핵 개발을 억제할 별다른 전략이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란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채택된다고 해서 이란이 핵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더라도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대이란 제재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국 관리들은 유럽의 결의안 제출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을 했다는 WSJ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미국은 대신 유럽이 이란 은행을 제재하고,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등 경제적으로 더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IAEA가 이란의 협력 거부 사례를 담은 포괄적 보고서를 내도록 요구하는 안도 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한 JCPOA를 부활시키는 것을 외교정책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며 이란에 대해 ‘완화책’을 펼쳐왔다.
이란은 핵 문제와 관련해 최근까지도 미국과 간접적인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협상과 관련해 “양측(이란과 미국)의 상호작용은 제재 해제와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란과 갈등이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오만에서 이란 당국자들과 간접적으로 대화하며 중동 및 핵 문제를 논의했다.
이란 외교부는 IAEA가 제기한 ‘불통설’도 일축했다. 카나니 대변인은 이란이 IAEA를 향해 긍정적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최근 이란을 방문한 것도 양측의 오해를 풀고 건설적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6월28일 치러지는 이란 대통령 선거는 이란 핵 정책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핵 비확산 조약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방의 제재가 쌓이고 이란 경제가 위축되면서 일부 강경파 사이에선 ‘북한 모델’을 따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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