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1500명 허가” 미등록 엄격 단속에도 ‘유연성’ 발휘하는 일본[무국적 청년들(上)]
장기 거주, 범죄 없는 미등록은 가족 단위 수용
“한국 이민 원칙 없어…미등록 2세대 수용 고민해야”
〈무국적 청년들(上)〉 - 꿈을 잃은 청년들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이제 자유롭게 행동하고, 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7년 전, 17세이던 태국 국적의 소년 원 우티난은 일본 법원으로부터 일본 체류 허가를 받고 이렇게 털어놨다.
우티난은 태국 출신 미등록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티난이 태어난 직후 추방 됐고, 우티난은 어머니와 함께 단속을 피해 살았다. 그러다 13살때부터야 지역사회 도움을 받아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듬해 모자 모두에게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들 모자가 법원에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에선 졌지만, 대법원에선 결국 어머니는 태국에 돌아가되 우티난은 일본에 머물 수 있도록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도쿄 지방법원 판사는 “자녀가 어머니와 떨어지더라도 일본에서 계속 생활하길 원한다면, 자녀에게 특별체류허가를 부여할지 여부를 재고할 여지는 있다”고 했다. 당시 법원에는 우티난의 체류 허가를 요청하는 청원서 수천 장이 모였다.
우티난의 이야기에선 미등록 외국인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일본의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인구 감소 문제를 겪어 외국인 인력을 적극 유치했다. 미등록 외국인 단속에 있어선 한국보다 일본이 더욱 엄격한 측면도 있다. 다만 일본은 범죄 이력 없이 오래 머무른 이들에 대해선 체류 자격도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일본 ‘재류특별허가’는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미등록 외국인이 자진 신고했을 경우에 한해 본인과 가족의 상황, 인도적 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체류를 허가하는 제도다. 1996년부터 시행한 제도로, 3년 전에야 미성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5년짜리 한시적 체류허가 제도를 마련한 한국과 달리 오랜 기간 제도를 운영해왔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재류특별허가 제도를 통해 정주 자격을 받은 미등록 외국인은 5년간 1만4614명이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 2022년 1525명이 정주 자격을 얻었고, 2021년에는 코로나19 당시 불가피하게 출국이 어려웠던 사정을 감안해 예년보다 많은 8793명, 2020년 1478명, 2019년 1448명, 2018년 1371명 등이다. 연간 평균 1500명가량이 구제되는 셈이다.
미등록 외국인 구제 대상을 넓히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제류특별허가제도는 시행 초기 일본인과 혼인한 미등록 외국인에 한해서만 주로 인정했다. 2000년에는 ‘일본에서 장기 거주하고 학령기 자녀가 있는 가족’까지 허가 대상에 포함했다.
법무성이 매년 공개하는 재류특별허가제도 사례집을 보면, 허가 기준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본에 16년간 머무르며 범죄 경력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A씨와 그 배우자, 그리고 각각 11세와 9세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일괄 체류 허가를 받았다. 반면 22년간 머물렀지만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 중 또다시 마약을 투약한 B씨는 마찬가지로 6세와 4세 자녀가 있었지만 체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정동재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미등록 체류자 문제에 있어 단속과 제재와 같은 처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미등록 외국인들을 지역 주민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일본 사회의 심각한 인구 감소 상황을 타개하는 방안과도 연결돼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보다 일찍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인 선진국들은 미등록 외국인 2세대 수용에 더욱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미등록 외국인의 자녀라도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 시민권자로 보고 복지혜택을 동일하게 제공한다. 교육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무료 공립 교육을 받을 권리가 미등록 외국인 자녀들에게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국은 미등록 외국인 자녀라도, 영국에서 태어나 10세까지 거주했다면 국적을 준다. 프랑스 역시 11살 이후 5년간 거주했다면 프랑스 국적을 주고 있다.
국내에 외국인 인력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됐음을 고려하면, 이들 자녀 세대도 지금 청년기에 진입하고 있다. 교육권 보장에서 나아가 이들을 정식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기라는 이야기다.
한건수 한국이민학회장(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외국인 인력은 받아들이면서, 이미 국내에 있는 미등록 외국인은 어떻게 다룰지는 논의하지 않는다면 이민 정책의 기본 원칙조차 없는 것으로, 적어도 어떤 기준을 두고 일부는 단속하고 일부는 수용할지 기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미등록 외국인 자녀들의 정착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에 대한 연구부터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미등록 외국인 청소년들이 문제 없이 학업을 이수할 경우, 지역특화비자를 제공하고, 지역 내 다양한 업종별 기업에 취업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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