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 단장 “한국무용할 뻔… 상모돌리기도 잘했어요” [나의 삶 나의 길]
창단 멤버로 합류해 수석무용수로 50여 작품에서 주역…은퇴 후 단장 맡아 발레단 중흥 이끌어
“‘세계 정상’ 목표 어느 정도 이뤄 감격…설립자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팔길이 원칙’ 지원 덕분”
유니버설발레단, 지난 40년간 한국 발레계의 눈부신 발전에 큰 영향 끼쳐
‘국내 최초’ 기록 잇따라 쓰며 19차례 해외 순회공연으로 ‘발레 한류’ 개척에도 앞장
문 단장, “유니버설발레단의 역사는 한국 발레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해”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비전…“창작발레 ‘심청’, ‘춘향’ 해외에 널리 퍼지길”
이번 생일상을 치우면서 누구보다 감회가 남다른 이가 있었으니, 바로 문훈숙(61)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다. 1984년 5월12일 창단 당시 수석무용수로 시작한 그는 2001년 토슈즈를 벗은 뒤 단장직에 전념했다. 발레단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23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집무실에서 만난 문 단장은 ”한국이 발레의 불모지였던 시절 창단하고 무용수도 10여명에 불과했지만 ‘세계 정상’을 목표로 삼았던 발레단이었다”며 “그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아 감격스럽다. ‘한국 발레의 발전과 발레사는 유니버설발레단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7살 때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다. 그러다 리틀엔젤스예술단(우리 전통 예술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평화의 정신을 퍼트리기 위해 1962년 창단)을 이끌던 아버지(박보희 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가 ‘딸 셋 중 한 명은 해야 되지 않겠냐’ 해서 둘째인 내가 리틀엔젤스 단원이 됐다. 전통 무용을 배우고 예술단 해외 순회 공연 다니러 10살 때 한국으로 유학왔다. 상모돌리기도 잘 했는데 지금도 하라면 할 수 있다.(웃음)
이후 1976년 선화예중에 입학했는데 발레반이 새로 생겼다. 그때는 발레 유망주가 없어 미국에서 온 애드리언 델라스 선생님이 무용부 학생들 중에서 뽑아야 했다. 어렸을 적 경험으로 발레 시범 동작을 해보였고 그렇게 발레를 다시 하게 돼 여기까지 왔다. 델라스 선생님을 못 만났으면 한국무용하는 사람이 됐을 거다.(웃음)”
―몇 년 후 발레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는.
“졸업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하고 싶었는데 오디션 일정이 안 맞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워싱턴발레단에서 2년가량 활동하던 중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됐다. 선화예중고에서 배출한 무용수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델라스 선생님이 초대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당장 수석무용수가 급하다며 나를 호출했다. 수석무용수를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델라스 선생님 지도 아래 단원 모두가 똘똘 뭉쳐 피나도록 연습하면서 양질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고 애썼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한다면.
“발레단이 1992년 ‘백조의 호수’를 초연하기 위해 마린스키발레단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이 작품은 발레단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였다. 처음엔 비노그라도프가 ‘너희는 아직 그 수준이 안 된다’며 거절했다. 간절하게 매달려 승낙을 받아낸 뒤 6개월 동안 맹연습을 해 성공적으로 공연하자 그도 놀라더라. ‘한국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구나’라고.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부터 ‘지젤’까지 2년마다 마린스키 작품을 올리며 발레단이 크게 도약했다.
―토슈즈를 벗고 은퇴할 때 기분이 어땠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용수는 대개 40살 전후로 힘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때 마침 발가락 부상으로 수술을 했다. 이듬해 올린 ‘로미오와 줄리엣’이 맥밀란 버전이었으면 은퇴 안 하고 기를 쓰고 했겠지만 다른 안무가의 작품이었다. ‘여기까지만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후배들한테 물려줄 때가 됐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무대는 용서가 없는 곳이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다.
“단원들과 오랫동안 동료였던 터라 본격적으로 단장직에 적응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그때부터 빈 객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공연하는데 왜 표가 안 팔리는 건지 의아했다. 무용수 때는 춤에만 집중하느라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최고경영자(CEO) 모임 등 사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 10명 중 9명이 ‘발레는 지루하고 대사가 없어 어렵다’, ‘비싼 티켓을 사서 갔는데 존다’고 해 깜짝 놀랐다. 그래서 ‘관객이 왜 안 오시지’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발레단 안팎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고민하고 준비한 끝에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 ‘발레 토크 콘서트’ 등을 열었는데 관객 반응이 좋았다. 그야말로 ‘발레 전도사’가 됐다.(웃음)”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란 비전을 내세운 이유는.
“불혹의 나이에 맞게 (재정)자립도를 더 높여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발레단의 활성화와 발레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한국 발레가 선순환 구조로 지속 발전하도록 공공 지원이 절실하다. 아울러 양질의 작품을 계속 선보이고 발레단의 자산이 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유니버설발레단이 좋은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기업 등 후원자 분들은 정말 대환영이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문훈숙 이후 유니버설발레단’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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