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공시 시작됐는데…‘저평가’ 금융지주 잠잠한 이유는

정윤성 기자 2024. 5.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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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관심 높은 금융지주…공시는 KB만 발표
금융권 “예고 공시 의미 있나”…부담만 늘까 우려
공시 참여 저조하면 밸류업 힘 빠져…“인센티브 마련할 것”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KB금융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른 예고 공시의 첫 타자가 됐다. 수많은 상장사 중에서 가장 먼저 기업 가치 제고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일단 다른 지주들은 지켜보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평가받는 금융지주사들은 왜 관망하고 있는 것일까.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그룹은 전날 '기업가치 제고 계획' 예고 공시를 냈다. ⓒ 연합뉴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그룹은 전날 '기업가치 제고 계획' 예고 공시를 통해 "이사회와 함께 'KB의 지속가능한 밸류업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으며, 이를 토대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마련해 2024년 4분기 중 공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시행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기업은 현황 진단과 기업가치 제고 목표, 계획을 담고 이행 평가 및 소통 계획 등을 작성한 문서를 자율적으로 공시할 수 있게 됐다. 예고 공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함께 마련됐다.

이날 코스피 상장사 810개 기업 중 해당 예고 공시를 한 곳은 KB금융이 유일하다. KB금융은 "그간 밸류업에 앞장서 온 가운데, 긍정적인 제도가 마련된 만큼 적극적인 밸류업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건물 ⓒ 시사저널 박정훈

예고 공시 필요성 의문…계획 확정하기도 부담

밸류업에 적극적이던 다른 금융지주들은 잠잠하다.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꼽히는 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역시 그간 밸류업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쳐 왔다. 신한금융의 경우 KB금융과 더불어 최근 뉴욕에서 열린 '인베스트-K파이낸스' 투자설명회(IR)에 참여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지주는 예고 공시 및 밸류업 공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공통적으로 예고 공시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밸류업 및 주주가치 제고엔 적극 동의하지만, 굳이 공시 계획을 미리 결정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리 공시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중·장기적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상황에서 추가로 공시 일정을 확정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언제쯤 내겠다고 미리 공시하는 건 부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밸류업이 논의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주들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가치 제고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정부가 '상생금융' 등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배당을 비롯한 주주환원 자제를 강도 높게 압박하면서다. 4대 금융지주의 주가는 지난해 1월 한 때 실적 호조에 따른 주주환원 기대감으로 20% 이상 뛰었지만, 그해 3월 정부의 압박이 시작되면서 급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인해 국내 투자 심리까지 위축되자 금융지주에 대한 저평가는 계속됐다. 이런 변수의 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주주환원 등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과감히 예정하긴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밸류업 일정 빽빽한데…낮은 참여율 끌어올릴까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금융권 반응도 미온적이자 공시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기업들이 공시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시 참여율이 저조하게 되면, 당국의 밸류업 프로그램도 힘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9월 중 'KRX코리아 밸류업 지수(밸류업 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다. 해당 지수에는 수익성, 자본효율성 등을 비롯해 모범 공시 기업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더불어 해당 지수를 연계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상품도 4분기 내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공시 참여가 떨어질수록 모범 기업 선정의 공신력 등에 의문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해당 지수를 기초로 하는 금융상품 설계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당국은 국민연금공단 등 연기금이 해당 지수를 활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라 지수의 효용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당국은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열린 '자본시장 밸류업 국제세미나'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핵심은 기업이 각자 특성에 맞게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시장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당국에서는 인센티브 제공 등 밸류업 성공을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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