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니 모레티 영화에 소주 마시며 “건배” 장면, 왜?

김은형 기자 2024. 5. 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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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개봉하는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의 신작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는 감독과 제작진이 소주를 부딪치며 한국말로 "건배"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파산 위기에 처한 제작자는 사기에 연루돼 잡혀가고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인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으며 50년 영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노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극적으로 한국인 투자자를 만난 직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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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찬란한 내일로’ 출연 한국배우 유선희
영화 ‘찬란한 내일로’. 에무필름즈 제공

29일 개봉하는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의 신작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는 감독과 제작진이 소주를 부딪치며 한국말로 “건배”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파산 위기에 처한 제작자는 사기에 연루돼 잡혀가고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인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으며 50년 영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노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극적으로 한국인 투자자를 만난 직후다. 이탈리아에서 범죄 액션 영화를 찍던 한국 제작진은 조반니의 연출작이 죽음으로 끝나는 비장한 작품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 전격 투자를 결정한다.

난니 모레티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1994년작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언급될 정도로 긴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코너에 몰린 이탈리아 감독을 구해낼 정도로 커진 한국영화산업을 바라보는 노감독의 시선이 흥미롭다. 하지만 “건배”와 ‘원샷’의 디테일은 감독이 아닌 배우에게서 나왔다. ‘찬란한 내일로’에서 한국인 통역사를 연기하며 데뷔작으로 칸의 레드카펫까지 밟은 배우 유선희(42)다. 개봉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유선희를 24일 서울 광화문 에무시네마에서 만났다.

“영화에서처럼 난니 감독님은 영화를 찍다가 대사나 이야기를 바꾸기도 하는 등 현장이 변화무쌍해요. 촬영 전날에야 완성된 대본이 나오곤 했어요. 그러다가 다음날 한국 제작진과 축배를 드는 장면을 찍는데 최대한 한국적으로 표현해보란 주문을 받았죠.” 소품팀에서 술잔으로 준비한 날씬한 양주잔 대신 집에 있던 소주잔을 직접 챙겨오고 “건배”를 외친 뒤 ‘원샷’으로 마무리하는 씬이 그의 아이디어로 완성됐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 촬영 현장에서 난니 모레티 감독과 함께 포즈를 위한 배우 유선희. 유선희 제공

이런 한국의 술문화가 그에게도 익숙한 건 아니다. 유씨는 예원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10대 때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공부하며 정통 코스를 밟은 피아니스트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도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관심이 많아 클래식 뮤직비디오도 연출했다. 이런 그에게 한 친구가 연기를 추천했고 한국인 출연진을 구한다는 정보를 듣고 오디션에 참여해 역할을 따냈다. 국내 개봉 전 가진 관객들과 대화 때는 엔니오 모리코네와 니노 로타 등 이탈리아 영화 음악가들의 곡으로 작은 연주회를 열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투자자는 구하기 힘들고 넷플릭스에 굴욕당하는 처지의 주인공과 현재 영화산업이지만 ‘찬란한 내일로’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에서 발산되는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스태프와 이탈리아의 주요 영화인들이 함께 걷는 마지막 퍼레이드 장면은 배우 유선희에게도 가장 인상적인 촬영 순간이었다.

“출연진과 서커스 코끼리들의 퍼레이드 촬영을 끝냈는데, 감독님 마음이 바뀌어서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 감독들까지 함께 걷는 장면으로 재촬영을 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엄청 더운 6월 말이었는데 모두가 함께한다는 기쁨이 영화의 마지막과 똑같은 에너지를 발산했죠.” 자조적인 유머를 넘어 미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찬란한 내일로’는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50만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 에무필름즈 제공

유씨는 이탈리아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영화와 드라마, 음악, 음식까지 까다로운 이탈리아인들의 ‘한국 사랑’이 뜨거워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난니 모레티 감독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그를 몹시 부러워했다고. 인터뷰도 좀처럼 안하는 난니 모레티 감독이지만 국내 개봉을 기념해 한국의 극장 관객들과 영상으로 만나 대화할 예정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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