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 손가은의 야망···“즐기면 이길 수 있어요”[스경X인터뷰]
‘야구’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손가은(18·화성동탄BC)의 목소리가 우렁차졌다. 취재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쭈뼛거리던 모습은 간데없었다. ‘즐기자’라고 써넣은 야구모자를 눌러쓴 손가은은 “즐기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야구는 한국의 4대 구기 종목(축구, 야구, 배구, 농구) 중 유일하게 여자 프로팀과 실업팀이 없는 종목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야구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손가은에게는 자연스럽게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자주 따라붙는다. 손가은은 2023년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와 올해 황금사자기전국 고교야구대회에 모두 여자 선수 최초로 출전했다. 여자 선수가 전국 고교 대회에 나선 것은 1999년 대통령배 덕수고 안향미 이후 처음이었다. 남자 고교선수들 사이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손가은의 모습은 여자 고교선수를 육성하지 않는 한국 야구계의 암울한 현실인 동시에 여자야구 성장을 위한 한 장면이었다.
지난해 봉황대기 1회전에 야수로 선발 출전한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경기 전날 밤잠을 못 이뤘다. 수비할 땐 외야로 날아오는 공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즐기자’라는 마음가짐은 손가은이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긴장을 진짜 많이 해요. 그렇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기려고 해요. 즐기면 이길 수 있더라고요.”
손가은은 자신에게 가장 즐거운 일인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 선수로서 경기를 뛰고,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고 싶다. 축구나 소프트볼 등 다른 운동도 해봤지만 어떤 것도 야구만큼의 울림이 없었다. 손가은은 “나는 취미도 야구, 특기도 야구, 전부 야구다”라며 “공을 잘 때리면 그 순간이 일주일 내내 생생하다. 온종일 다음 시합 땐 공을 어떻게 칠지, 감독님의 오더가 어떻게 내려올지 마치 내가 감독이 된 것처럼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선발로 시합에 못 나가더라도 계속 기회를 주시는 화성동탄BC 이주희 감독님께 항상 감사하다”는 손가은은 야구에 대한 열정에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 ‘여자 야구선수’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한국프로야구(KBO) 출범 당시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됐다. 이 문구는 1996년 규약에서 사라졌지만 여자 프로야구선수는 아직 없다. 한국의 ‘1호 여자 야구선수’로 불리는 안향미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야구팀 입단 테스트(트라이아웃)에 참여했으나 탈락했다.
손가은은 “일본 여자 실업야구팀에서 선수를 하고 싶다”며 “한국에서는 야구를 하면서 내가 돈을 벌 수가 없는데 나는 야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한국 유소년 야구팀에서 지도자를 하며 ‘야구소녀’들을 육성하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그는 “여자야구는 초·중·고등학교에 엘리트 코스가 없으니까 자꾸 경력 단절이 된다. 그게 한국에서 여자야구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체력은 누구한테 뒤지지 않아요. 발이 빨라서 달리기는 또래 남자애들이랑 붙어도 자신 있어요. 공을 치고 냅다 뛰는 순간이 너무 좋아요.”
손가은은 “전국대회에서 일단 안타를 치고 싶고, 투수로 올라간다면 아웃 카운트를 잡고 싶다.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제가 여자 선수로서 첫 번째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손가은은 “‘최초’라는 타이틀에 원래 욕심이 없었는데, 야구를 하다 보니 여자라서 주목받는 거 말고 그냥 잘해서 주목받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손가은은 마지막 학창 시절을 고교야구에 ‘올인’하고 싶어 올해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지원하지 않았다. 손가은은 “오는 8월 봉황대기가 내 마지막 고등학교 전국대회다. 지금까지는 주로 벤치에서 시작했으니까 선발로도 나가보고 싶고 안타도 치고 싶다. 그 생각만 하면서 스윙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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